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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3

202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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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왜 예술가들은 ‘을’이
되어야 하는가

정여울 작가

문학계 불공정 관행에 관한 예술가들의 보이콧

2020년 문학계에는 수많은 ‘보이콧’이 있었다. 이상문학상의 불공정 운영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윤이형 작가가 절필을 선언했고, 이 초유의 사태에 항의하는 수많은 작가들이 ‘문학사상사가 운영하는 잡지에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결심을 전하며 ‘문학사상사 업무 거부 운동’을 벌였다.

김금희 작가가 2020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불거진 문학사상사 보이콧 사태는 ‘작가의 저작권’을 지켜주지 않는 문학사상사의 오랜 관행에서 비롯되었다. 이상문학상 대상뿐만 아니라 우수상 수상 작가들에게도 해당 작품을 자신의 작품집에 3년 동안 싣지 못하게 하는 불공정 관행(즉 출판사가 작가의 저작권을 빼앗는 것)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그것에 항의한 작가들이 오히려 손해를 끌어안는 보이지 않는 권력형 비리의 일종이었다.

문학사상사는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로서의 오랜 권위와 매체 권력을 휘둘렀고, 작가들은 문학사상의 거대한 권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묵하거나 저작권 조항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고스란히 피해를 끌어안아 왔다. 단지 작가의 저작권을 부당하게 탈취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문학사상사는 윤이형 작가에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 미처 기쁨을 만끽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일주일 안에 새로운 원고(수상작가의 말, 작가의 문학세계에 대한 비평가의 글까지)를 달라’는 요구를 했다. 자신의 문학세계를 총점검하는 중요한 글을 겨우 일주일 만에 어떻게든 써야 한다는 무리한 요구 앞에서 그동안 수많은 작가들이 혹사당했을 것이다. 문학사상사의 원고료는 박하기로 유명하며, 그 원고료조차도 제때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척박한 글쓰기 노동자로서의 삶

11년 동안 활발하게 문학평론 활동을 해온 장은정 평론가의 고백도 충격적이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문학평론가로서 발표한 원고는 총 176편, 매수는 총 5728매입니다. 원고료만 따지면 3390만 원을 벌었기에 1매당 5863원을 책정받은 셈입니다. 원고료 이외의 활동비 210만 원, 각종 상금 2500만 원을 합하면 총 6100만 원이 되는군요. 11년간 월평균 46만 원을 벌었습니다.”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문학평론가로서 꾸준한 활동을 벌여온 문학평론가의 사정이 이렇다면, 다른 평론가들의 집필 환경은 또 얼마나 열악했을까. “매당 5000원짜리 삶을 살았다는 자괴감을 떨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경제적 조건이 비평이라는 장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비평가로 하여금 어떠한 자의식을 갖게 하는지 면밀히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웹진 비유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은정 평론가는 ‘글쓰기 노동자로서의 삶’을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지적했다. 11년 동안 청탁서가 있었던 경우는 73%, 청탁서에 원고료가 기재된 비율은 51%에 불과했다고 한다.

문학계의 ‘시급’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학동네에서 운영하는 ‘젊은 작가상’ 예심 또한 엄청난 노동량에 비해 아무런 노동의 대가가 없었다. ‘젊은 작가상’은 최근 ‘김봉곤 작가의 사적 대화 무단인용 사태’로 더욱 주목받게 된 문학동네의 대표적 문학상이다. 나 또한 오랫동안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예심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작업’임을 깨닫고 있었다.

예심의 대상이 되는 문학작품은 대부분 수백 편 이상이다. 단편 한 편을 면밀히 검토하는 데도 최소한 4~5시간이 걸리는데, 수백 편의 예심 대상 작품을 읽는 것은 엄청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현재는 30만 원 가량 예심 위원들을 위해 심사비가 책정되었다고 하지만, 30만 원 여기 터무니없는 금액이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 문제제기를 해도 바뀌지 않고, 트위터나 언론을 통해 심각하게 문제제기가 되어야만 비로소 ‘꿈틀’하는 출판사나 문학계의 관행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2015년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 2016년 문학출판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2017년 최영미 시인의 미투, 2020년 이상문학상 저작권 문제 등 수많은 ‘사태’들이 벌어지면서 작가들과 평론가들의 ‘글쓰기와 출판의 윤리’가 변화하고 있다. 장은정 평론가는 2019년 웹진 〈비유〉에서 작가들의 원고료에 관한 충격적인 실태를 보고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지발간사업 평가 연구용역’에 따르면 문학출판계 평균 원고료는 시 6만7586원, 소설 8679원, 비평은 6,885원 등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결국 문학계의 ‘시급’은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문단권력의 ‘갑질’을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과거와 달라진 것은 이제 ‘싸우는 예술가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김봉곤 작가의 2020년 젊은 작가상(문학동네 주관) 수상작 〈그런 생활〉이 실존인물을 대상으로 하면서 SNS로 나눈 대화를 그대로 무단 인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작품이 실린 〈시절과 기분〉(창비) 또한 판매중단 조치 되었고, 이로 인한 환불과 김봉곤 작가의 사과가 이어졌지만 이 또한 너무 ‘때늦은 대응’이라는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김초엽 작가가 ‘창비에 글을 싣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장류진 작가와 이현석 작가도 동조했다. 수많은 작가들이 ‘문학동네라는 이유로’, ‘창비라는 이유로’, ‘이상문학상이라는 이유로’ 침묵했던 과거의 관행을 비판하고 있다. 왜 작가들은 이토록 스스로를 비판하고 절필까지 선언해가며 고통을 떠안고 있는데, 출판사들과 잡지사들은 바뀌지 않는 것일까. 정용준 작가는 이런 바뀌지 않는 구조를 ‘간절한 사람이 을이 되는 구조’라고 이야기했다. 출판이 간절한 작가, 수상이 간절한 작가들을 ‘을’로 만드는 이 문단권력의 ‘갑질’을 우리는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이제 우리는 상처받는 존재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갑도 을도 아닌 자리, 그냥 아무 꾸밈없는 예술가의 자리는 진정 존재하지 않는 걸까. 소수의 스타 작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사실상 ‘을의 자리’에서 온갖 불합리와 싸우며 자신의 작품을 지켜내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출판계 불공정 관행의 밑바닥에는 간절한 사람이 을이 되는 구조가 숨어있다. 가장 절실하게 글을 쓰고 싶어하는 작가들이 가장 가혹하게 출판사의 횡포와 싸워야 한다.

왜 간절한 사람이 을이 되는가. 그 질문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을의 간절함, 간절한 자의 슬픔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에게는 분명히 간절함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단지 자기 책을 내는 것에만 간절한 존재가 아니다. 작가는 글을 통해 독자들을 웃고 울릴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다.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소통과 교감을 이루어내는 존재다. 글쓰기라는 무기, 그것은 우리가 지닌 가장 소중한 무기이며 절실한 정체성이다. 작가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어떤 힘을 가진지도 모른 채 ‘매체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지독한 언어들에 맞고 찔려 상처받아왔다.

이제 우리는 그렇게 상처받는 존재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부당한 매체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 맞서 ‘그 매체에는 글을 싣지 않겠다’고 선언할 것이며, 그 힘을 모아 독자들이 ‘그 출판사, 그 잡지, 그런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들이 만든 책’은 사지 않겠다고 결심할 때까지 싸울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무기, 글쓰기의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