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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3

202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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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의 의의와
앞으로의 과제
황승흠(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의 경과

2021년 9월 24일에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공포되었다.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로부터 시행되니, 2022년 9월 25일부터 이 법이 시행되는 것이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처음 제안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재발 방지책으로 언급한 2017년 초다. 이후 2017년 7월에 민관합동으로 출범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는 그해 12월에 문화체육관광부에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을 제도 개선 과제로 권고하였다. 하지만 현 정부 100대 과제에서도 우선순위에 있던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예술인의 권리보장이라는 대의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쳤다.

먼저 2018년에 본격화된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으로 인한 성희롱·성폭력 방지대책이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 과제로 합류하였다.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방지 대책에 대한 독자적 입법도 가능했지만, 예술인 권리보장이라는 대의를 보다 강화하기 위해 「예술인 권리보장법」이라는 하나의 배에 올라탄 것이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출발점이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라는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 보장이었다면, 예술인에 대한 성희롱·성폭력을 방지하여 성평등한 예술 환경을 조성하자는 과제는 예술인의 권리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실행 방법에 차이가 있어 하나의 법제도로 묶는 것이 쉬운 과제는 아니었다. 여기에 블랙리스트의 방지와 성희롱·성폭력 방지를 넘어, 예술인의 미래를 위해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의 보호와 증진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축으로 설정되었다. 이는 예술인조합을 새로 도입하고 현재 「예술인복지법」에서 운영하고 있는 예술인에 대한 불공정행위 금지 제도를 확대·개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세 개의 축을 갖춘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20대 국회가 열리던 2019년 4월에 김영주 의원 대표발의로 제출되었다. 하지만 국회 논의과정에서 여야 합의는 쉽지 않았고, 특히 예술인의 권리보장 제도에 있어 사법적 특례에 대한 사법기관의 강한 반대가 있었다. 사법적 특례를 삭제함으로써 상임위원회를 넘어 법제사법위원회 단계까지 갔으나 야당은 절차적 하자를 들어 통과를 반대하였고, 결국 제 20대 국회에서는 임기만료 폐기되는 운명을 겪었다. 이후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21대 국회가 시작된 2020년 6월에 20대 국회의 법사위 제출안을 기초로 하여 김영주 의원 대표발의로 다시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번 국회에서는 주로 보호대상인 예술인의 범위와 예술인 권리보장과 성희롱·성폭력의 이원적 보호체계가 문제되었다. 지난 국회에서 절차적 하자로 지적되었던 입법공청회가 2021년 3월에 열렸고, 8월에 상임위와 법사위 그리고 8월 31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의 의의

2017년에 시작한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은 5년에 걸친 대장정 끝에 제도화의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이 법의 제정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헌법이 보장하는 예술가의 권리보호에 관한 본격적인 법률이 처음으로 제정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헌헌법에서부터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는 규정을 두어 예술가의 권리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선언하였다(제22조 제2항). 그러나 이 조항은 그 동안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예술인들조차도 예술가의 권리가 헌법에 특별하게 규정되어 있다는 점을 거의 알지 못한다. 더구나 우리가 참조할 만한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헌법에는 이러한 규정이 없다. 그런 이유로 법학자들도 이 조항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저작권법 정도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가 법학자들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로 인해서 헌법이 보장하는 예술가의 권리라는 시각이 새로이 대두되었고, 블랙리스트 사태의 원인 중의 하나가 예술가의 권리보장에 대한 법제도가 부족했다는 점이 받아들여지면서,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제정이 ‘헌법이 명하는 법률의 제정’이라는 대의를 갖게 되었다. 1948년 7월에 공포된 제헌헌법에서 선언한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서 보호한다’고 한 규정, 그리고 현행 헌법 제22조 제2항에서 말하는 바로 그 ‘법률’이 제정된 것이다. 1948년부터 73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 비로소 우리 헌법이 완성되었다는 점을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첫 번째 의의라고 말하고자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내용은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 보장, 직업적 권리의 보호와 증진, 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가지 축은 ‘블랙리스트’와 ‘미투’라는 문화예술계의 가장 아팠던 과거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과 미래를 향해 예술인의 지위를 향상시키겠다는 직업적 권리의 증진을 말한다.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의 실질적인 의의는 예술인의 지위를 더 이상 과거와 같이 후퇴시키지 않고 오직 향상시키고자 하는 법제도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위원회’와 ‘예술인보호관’을 둠으로써 예술인 권리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조사와 구제조치를 가능하게 하였다. 행정체계로서 예술인보호관은 예술인의 권리보장과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를 위한 행정방안을 수립·시행한다. 이를 통해 예술인의 지위가 실질적으로 향상될 것을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의의는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의 보호와 증진이 본격화되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예술인복지법」에서도 불공정행위 금지제도를 시행하여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에 대한 보호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예술인복지법」 체제에서는 실질적인 조사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아 이 제도가 본격화되기 어려웠고, 예술인이 스스로 조직화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서 수동적인 권리보호만이 가능하였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에서는 예술인조합을 규정하여 예술인이 자신의 직업적 권리보호를 위해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방안을 규정하였고, 「예술인복지법」의 불공정행위 금지제도를 가져와 이에 실질적인 조사체계를 갖추게 함으로써 제도의 본격화가 가능하게 하였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시행되는 내년부터는 불공정행위 금지 제도가 「예술인복지법」이 아니라 「예술인 권리보장법」 체제에서 시행된다. 2013년에 「예술인복지법」의 개정으로 금지행위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이 제도는 이제 새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인 권리보장법」 하위법령 제정의 과제

끝으로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시행령·시행규칙의 제정이 필요하기에, 이 과제의 중요한 지점에 대해서 언급하려고 한다. 시행령·시행규칙은 법률의 위임에 따라 세부사항을 정하는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법률의 내용이 충분하지 않아 실질적인 규범으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시행령·시행규칙에서도 네 가지의 중요한 과제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보호대상인 예술인의 범위에 관한 것이다. 법률에서는 전업예술인을 기준으로 했으나 예술인에 대한 권리 침해가 교육을 하는 중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대통령령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예술인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도록 하였다. 예술 교육이 제도권인 경우가 많지만 사교육 같은 비제도적 것도 있어 쟁점이 될 수 있다.

둘째는 예술인조합의 요건에 관한 것이다. 예술인조합의 대강은 법률에서 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요건과 운영방식은 시행령·시행규칙에 정하도록 하기에 예술인조합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입법화하는 과제가 있다.

셋째는 성희롱·성폭력 예방조치에 관한 것이다. 성희롱·성폭력은 피해가 발생했을 때의 조치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예방될 수 있도록 하는 실효적인 체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넷째는 예술인의 권리침해 조사절차의 적정성에 관한 것이다. 그 대강은 법률에 규정되어 있으나 세부절차가 어떻게 구체화하는가에 따라 절차의 실효성이 문제될 수도 있다.

모쪼록 적정한 시행령·시행규칙의 제정으로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보다 예술인의 지위 향상과 권리보장을 위해 보다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