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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0

202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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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영정 대표
제도와 현장 사이의
틈을 메울 수 있도록

“제도와 현장 사이의 틈을
메울 수 있도록”

“예술인들의 안전한 창작 환경 조성을 위해 재단이 더 나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4월 1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재단) 제4대 상임이사로 임명된 박영정 대표의 소감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연구본부장,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교육지원위원회 위원, 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 등을 거치며 정책연구와 행정 경험을 두루 쌓은 박영정 대표. 박대표는 기존 예술지원정책 중심의 문화정책에서 예술인에 초점을 맞춘 ‘예술인 정책’이라는 새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예술인복지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박영정 대표의 취임 소감을 들어본다.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예술인복지법」과 재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회가 더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은 예술(활동)에 대한 지원이었지, 그 예술작품을 만드는 예술인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부재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예술인복지법」은 ‘복지’라는 꼬리표가 있기는 하지만 예술가를 정책 대상으로 보는 제도화의 첫 출발로 굉장히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저는 당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몸담고 있으면서 예술인복지제도를 만드는 과정에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이 자리가 굉장히 영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게 되어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고 있습니다.

예술인 정책이라는 새로운 정책방향을 세워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예술인 복지에 관심을 갖고 정책으로 추진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유네스코에서 ‘예술가 지위에 관한 권고’를 채택한 것이 1980년이었습니다. 예술가의 사회적·경제적 권리를 인정하자는 것이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 문화비전 『창의한국』에서 예술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 보호가 문화정책의 주요 의제로 공표된 바 있습니다. 이후 예술인 4대보험 적용이나 예술인공제회 설립 등이 정책 이슈로 등장하였고, 그러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 예술 지원만이 아니라 예술인 자체를 지원하는 ‘예술인 정책’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것이지요. 2011년에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에는 일련의 시대적 고민과 정책적 대응이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양한 정책연구와 학술발표, 그리고 행정 경험을 쌓아오셨습니다. 이러한 풍부한 경험을 어떻게 재단 운영에 활용하실 생각이신지요?

출범 10주년을 앞둔 재단은 예술인들을 둘러싼, 굉장히 크고 많은 환경 변화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여 재단이 더 나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좀 더 큰 정책 방향을 찾아내는 일을 하려 합니다. 또 출범 시점과 비교해보면, 재단이 굉장히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고, 예산 규모도 확장되어 있는데, 이런 재단의 사업구조를 좀 더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흐름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재단 출범 후 올해 처음으로 예술활동증명 누적 완료자가 10만 명이 넘었는데요. 이 숫자의 의미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예상했던 것에 비해 굉장히 이른 시점에 예술활동증명 누적 완료자가 1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예술인들은 여러 직업들을 겸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직업군처럼 그 규모를 특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예술인 규모는 대략 얼마쯤 되겠다는 추정치밖에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술활동증명 완료자가 10만 명이라는 것은 적어도 10만 명의 예술인이라는 구체적인 존재가 드러난 것이지요. 이것은 향후 예술인 정책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이렇게 속도가 빨라진 배경에는 아시다시피 작년과 올해의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재난 상황이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예술인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불행과 슬픔을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시대에 대응하여 온라인 예술활동 실적도 인정하고, 신진예술인 예술활동증명을 신설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고 있지만, 예술활동증명의 신청에서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은 여전히 오래 걸리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요?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하는 데는 자료 신청 후 전문가 심의위원들의 심의를 거쳐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한 달 이상은 걸리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현재는 석 달 넘게 걸리고 있거든요.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예술인들의 증명 신청이 급증하면서 예년에 비해 신청 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데 비해, 그 업무를 처리해야 할 재단의 여건은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재난지원금 등은 긴급성을 요구하다 보니 예술활동증명에 대한 수요가 더욱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이 기간을 단축시키는 일이 저와 재단의 현안 중의 현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요 증가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제 위에 절차를 조금이라도 간소화하거나 관련 인력을 늘리든지, 지역문화재단들과의 협력을 확대해 나가든지, 어떤 식으로든 기간 단축에 노력을 기울여보겠습니다.

또 지역 광역재단과의 연계도 모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재단 사무국은 서울에 있지만 저희 사업은 전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 모두를 대상으로 합니다. 예술활동증명이나 예술인 복지에 대한 요구가 전국적으로 급증하는 추세여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문화재단과의 협력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이미 예술활동증명의 ‘행정심의’ 절차에서 광역문화재단과의 협력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14개 광역문화재단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지역 예술인들이 해당 지역의 문화재단 창구를 통해서 접수하고, 1단계에 해당하는 행정심의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서도 지역사업 유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마침 지역문화재단에서 예술인 복지를 담당하는 부서를 설치·운영하는 흐름이 확대되고 있어서 일부 사업만이 아니라 저희 재단과 지역문화재단 사이에 예술인 복지와 관련한 포괄적 협력 방안도 마련해 나갈 생각입니다.

임기 중에 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재단이 출범한 2012년과 비교해본다면 예술인 복지제도와 재단의 사업방향에서 많은 변화들이 보일 것 같습니다.

10년 전을 생각해보면 예술인 복지나 예술인의 권리에 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나 예술계 내부에서나 그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술활동증명 신청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고, 과연 정부 정책으로써 예술인 복지가 가능할 것인지 그 방식이나 재원 면에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많았었죠. 그러나 10만 명의 누적 완료자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바처럼 지금은 거의 모든 예술인들이 예술활동 못지않게 예술가 본인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노력이나 인식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재단 이름에 ‘복지’가 들어 있는데요.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좁은 의미의 복지에서 권리 보호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예술인의 권리인식이 향상된 만큼 예술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강화하고 예술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인 복지정책의 방향성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취임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고, 재단업무에 대해 파악중이어서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만 현재 문체부에서 예술인 복지 관련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고, 그 논의에 재단에서도 현장의 예술가, 전문가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기본계획의 큰 방향이 나오면 그것을 바탕으로 재단 사업과 함께 중장기 예술인 복지정책의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코로나19로 인한 예술인들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재단과 함께 하는 모든 예술인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가 조기 종식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만,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바로 그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인들이 다른 어느 집단보다도 재난 상황에서 더욱 위기가 심화되었기 때문에, 재단과 예술인 복지정책의 역할이 더욱 크게 요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재단 내부 여건이 녹록치는 않지만 재난 상황에 대한 대처 역량을 강화하여 예술인들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함께하고자 합니다. 사실 제도와 현장 사이에는 항상 일정한 틈이 있습니다. 정책이 있다고 해서 현장의 예술인들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재단이 제도와 현실 사이의 틈을 메우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 보고자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힘을 더한다는 마음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 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