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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8

202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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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
예술과 노동

음악생태계 당사자들의
'선(善)한 목소리'

이씬정석 뮤지션유니온(MU) 3기 위원장

노래를 만들고 곡을 발표해온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만든 노래가 처음으로 녹음되고 음반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알려진 게 1998년 봄이었으니 22년 전의 일이다. 대학의 수업보다 노래동아리 활동이 재밌었고 보람 있었다. 필자는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사회운동의 한 영역이었던 ‘노래운동’으로 진로를 모색했지만 처음부터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일이 직업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서 시작된 노래가 알려지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의미로 간직되는 게 신기했을 뿐이었다.

필자가 ‘뮤지션’이라는 직업을 내세우고 막상 살아보니 이 사회는 뮤지션들을 비롯한 예술가들에게 너무나 척박하기만 했다.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떠넘기고,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조건에 대해서는 책임져주지 않더란 말이다.

일반적으로 뮤지션들의 수입은 예측이 어려울 뿐 아니라 극소수를 제외하고 음악 활동을 통한 수입이 거의 없어 음악 작업을 지속하기 힘겨워한다. 특히 디지털 음악 환경으로 변화하면서 음반 시장의 몰락했고, 인디뮤지션 대다수가 다른 직업과 병행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했다. 필자도 안정적이지 못한 공연수입의 대책으로 강습이라는 생존조건을 만들었다. 개인레슨과 노래모임,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수업을 맡아 매달 최소한의 생존경비를 벌었다. 불안정한 공연수입만으로 생계를 지속하기란 불안하고 쉽지 않아 지인들을 통해 학교, 사회에서 문화예술강사 자리를 소개받아 강사비로 음악 활동을 지속할 조건을 만들어 가야 했다.

음반시장의 변화 속 인디뮤지션의 설자리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CD를 들고 다니면서 몇 장이라도 판매할 수 있었다. 음반제작비용이 적지 않지만 보따리 장사를 통해 음반을 판매하면 최소한의 필수 경비는 회수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음원플랫폼이 모바일과 웹 공간에서 안착하면서 음반 시장은 팬덤을 구축한 아이돌들의 굿즈(goods) 시장으로 바뀌었고 인디레이블들이 버티던 소규모 음반 시장은 몰락하였다. 이름 없는 뮤지션들은 음반을 판매할 수 없으니 제작한 CD를 쌓아둘 수 없어 명함처럼 나누어주고 있으며 음원플랫폼에 등록한 곡들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푼돈에 불과하다. 필자도 보컬 팀을 만들어 2005년에 제작한 음반은 제작비용을 충분히 회수하지 못했다. 이후 팀이 해체되고 제작비용을 몇 년 동안 개인적으로 갚아야 했다. 2011년, 2015년 두 차례 제작한 정규음반의 제작비용 또한 음반 판매를 통해 충분히 메꾸지 못했다. 기존 인디뮤지션들의 음악이 유통되는 음악유통체계는 완전히 붕괴됐다.

디지털 음악유통체계의 지배자인 음원플랫폼은 유료가입자들의 월정액을 꼬박꼬박 받아 자본이윤으로 나누거나 직원들 월급을 주고 있다. 음원플랫폼은 ‘뮤지션’들의 지속가능한 음악 활동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음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어떻게 나누어 더 많이 차지할지에 대해서만 눈독을 들인다. 소수 뮤지션들의 대박에 가려진 웹 서버 귀퉁이 어딘가에서 이름 없는 뮤지션들은 수백 혹은 수천만 원을 들이고, 온 힘을 다해 만든 음악이 디지털신호로 호출되어 누군가의 귀에 들려지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뮤지션유니온, 존재의 이유

무대가 고픈 많은 뮤지션들은 계약서없이 구두로 섭외되어 불명확한 조건으로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20년동안 많은 공연을 해왔지만 계약서를 맺고 진행한 공연은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무료로 공연한 경우도 많지만 정당한 공연비를 요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행사 주최 측에서 상정한 예산 범위에서 결정된 소액의 공연비를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유명하고 인기 있는 연예인이 아니라면 갑의 지위를 누릴 수 없다. 저작권 신탁, 음악저작물 거래, 공연 등의 모든 음악 활동에 대한 계약에서 보통의 뮤지션들은 어떤 자기 목소리와 요구를 할 수 없는 허울뿐인 ‘갑’의 위치에서 계약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자신의 공연비조차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고 자신을 불러주는 행사 주최 측의 일방적인 결정을 따를 수 밖에 없으며 그 조차도 계약서 없이 구두로 대충 전달받아 활동하는 현실에 놓여있다.

뮤지션유니온(MU)에 가입해 2018년부터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는 이유는 나를 포함해 많은 뮤지션들이 겪고 있는 불안정한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이다. 자본력을 갖춘 음악산업 자본에 철저히 길들여지는 기형적인 음악생태계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많은 예술인들이 긴 시간의 음악교육과 연습과정을 거쳐 ‘뮤지션’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그들의 노력은 배신당하고 기형적인 음악생태계의 과실은 음악산업 자본이 차지한다. 그나마 나누어주는 음악저작권료, 실연권료 역시 소수 뮤지션들이 독식하는 구조여서 ‘음원 사재기’를 해서라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비이성적인 음악생태계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으나 다들 음악산업 수직계열화의 카르텔과 예술시장의 기형적 유통구조에 편승하려 할 뿐 어느 누구도 ‘선(善)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음악은 우리의 일입니다! Music is MY WORK!

뮤지션유니온의 꿈은 뮤지션의 직업적 안정성을 사회적으로 보장받고, 당당한 음악으로 음악의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며, 음악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대우를 요구하는 사회적 교섭을 실현하는 것이다. 뮤지션유니온은 음악생태계의 당사자조직답게 뮤지션들이 겪는 불공정 피해사례에 노동조합 뮤지션유니온의 이름으로 대응하거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뮤지션들이 음악 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도록 예술인권리보장 입법 청원, 예술인고용보험 도입 촉구, 프리랜서 권리보장을 위한 조례 요구 등 조금 더 나은 사회제도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사회단체 등과 협업해 조합원들이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거나 대안공간에서의 공연을 조합원들과 직접 기획하기도 하는 등 음악 활동의 장(場)을 넓혀가고 있다.

뮤지션유니온은 2013년 창립, 2017년부터 노동조합으로 설립 신고를 하여 활동해왔다. 2020년 2월 9일, 정기총회에서 새롭게 4기 위원장을 선출하고 운영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노동조합으로서 “음악은 우리의 일입니다! Music is Work!”라고 뮤지션유니온으로 하나로 뭉쳐 목소리를 높여가다보면 ‘뮤지션’으로 살아가기에 너무나 힘겨운 음악생태계의 선(善)순환을 위해 기여를 하리라 생각한다.

뮤지션유니온이 음악생태계에 건강한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 많은 뮤지션들이 참여할수록 선(善)한 목소리의 힘은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뮤지션들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고민과 성찰로 지혜를 모아 이슈를 만들어가고 제도를 변화시켜가며 함께 실천하면 좀 더 나은 음악생태계는 이루어질 것이다.

뮤지션들이여, 뮤지션유니온에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