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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복지뉴스

사색 예술과 테크놀로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유기적 하나로

2018. 8
예술과 테크놀로지

과학기술과 예술 분야의 엄격한 구분이 생긴 건 19세기부터다. 그때부터 한동안 과학기술 영역과 예술 영역은 거의 극단적인 형태로 대비되었다. 예술은 창의적이고 주관이 개입하는 영역으로 사회질서와 전통가치의 보전 등과 연결되었고, 과학기술은 에토스가 충동과 주관을 억제하는 영역으로 공업 발전, 계급 유동성과 관련해 논의되었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원래부터 과학과 예술은 하나였다. 예술과 그것을 사용하는 기술을 통합한 개념의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는 로마인들에 의해 ‘아르스(Ars)’로 변용되고 이후 아트(Art)와 테크놀로지(Technology)로 분화했다. 테크네는 예술적인 결과와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술, 장인 정신 등을 모두 포함한 언어였다. 예술과 과학기술이 하나였을 때 동굴 문자의 발견은 과학기술의 시작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동굴 문자는 지금의 타이포그래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고대 예술가들이 자연에서 찾은 조화와 아름다움은 기하학의 단순성과 대칭성으로 연결되고, 그것은 다시 장식무늬의 토대를 형성하면서 현대 프랙탈(fractal) 이미지로 이어졌다. 그뿐인가. 피타고라스 이래로 수학과 음악은 같은 차원의 것이었다.

“아주 높은 수준의 과학적 원리나 규칙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영감에 의한 놀이 같은 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
  • 인체 비례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인체 비례도(Vitruvian Man)〉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는 예술과 과학기술의 통합적인 세계가 구축되었다. 예술가와 과학자, 기술자가 각각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과학자였고, 과학자가 또한 예술가였다. 대표적인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떠올릴 수 있다. 과학기술과 예술이 유기적인 관계임을 보여준 그는 과학자이자 예술가였고, 기술자이자, 해부학자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체비례도(Vitruvian Man)〉는 미술뿐 아니라 수학과 과학, 철학을 연결한 융합적 사고에서 탄생했다. 유클리드 원근법을 활용한 유명 건축가 브루넬레스키, 난해한 양자역학을 베토벤의 소나타에 비유한 이론물리학의 거장 바이스코프, 열정적인 바이올린 애호가였던 아인슈타인 등 융합적 사고는 여러 분야로 이어졌다. 아인슈타인이 음악에서 시간과 공간을 결합한 상대성 이론의 영감을 얻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아주 높은 수준의 과학적 원리나 규칙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영감에 의한 놀이 같은 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문학과 함께 발전한 건축, 직조기를 개량하는 과정에서 돌출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개념, 유리공예 기술에서 출발한 광섬유, 광학과 색채 이론의 발달과 인상주의 예술, 에디슨의 녹음기술이 음악 감상 방식에 미친 영향까지 예술과 기술과학의 접점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기술과학의 유기적 관계가 이처럼 늘 긍정적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다. 화학 실험을 통해 다소 실험적인 예술 작업을 진행하던 예술가를 보고 영감을 얻어 원자폭탄을 무기화했다는 이야기는 예술과 과학기술의 윤리 문제를 환기한다.

다시 만난 예술과 과학기술

19세기부터 대립적인 구분을 이어오던 예술과 과학기술이 상호 차이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유사성을 탐구하려는 새로운 작업들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기 시작한 건 1960년대에 이르러서다. 그보다 한참 앞선 1920년, 마르셀 뒤샹은 과학기술을 도입한 최초의 예술 작품으로 기록될 만한 오브제, 〈회전판〉을 선보인다.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로 꼽히는 마르셀 뒤샹의 〈회전판〉은 모터를 달아 작동하게 한 광학기계의 일종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반복된 곡선들을 입체적인 구조물 위에 그려놓고 전기장치를 이용해 실제로 움직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외에도 과학기술의 발전이 예술 표현 방법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될 법한 작품들이* 1960년대까지 다수 탄생했다.

예술과 과학기술이 상호 두려움을 완화시키며 서로를 다양하게 연결해보려는 시도는 1960년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예술가와 공학자의 협업체인 ‘E.A.T.(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 의 주요 활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E.A.T는 예술가와 공학자 회원 6천여 명이 활동하며 앤디 워홀과 백남준, 머스 커닝햄 등 현대 예술의 거장들과 교류해왔다.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의 중심에는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들이 협업을 통해 이뤄낼 멋진 신세계의 비전이 있었다. 그들이 이룬 예술적 표현 범주의 확장과 기술적 진보는 콘템포러리(Contemporary) 작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1930년 모홀리 나기는 〈빛의 기계〉라는 동력에 의해 실제 움직이는 입체 구조물을 선보였고, 1955년 NASA의 책임 과학자 말리나는 과학기술을 조형예술에 직접 접목시킨 〈jazz〉라는 작품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E.A.T.는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을 선구적으로 이끌어낸 그룹으로 1966년 예술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로버트 휘트먼, 벨 연구소의 공학자 빌리 클뤼버와 프레드 발트하우어가 결성한 비영리 단체이다. 새로운 기술적 시도가 범람하고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갈망할 수밖에 없었던 1960년대의 사회적 상황에서 예술가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예술적 표현 범주의 확장과 기술의 진보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예술에 새로운 소재를 제공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테크노 뮤직, 비디오 아트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 예술을 출현시켰다. 과학예술 융합 장르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가 1970년대를 기점으로 비디오 아트로 넘어가고, 다시 디지털 아트로 발전한 일련의 과정 역시 과학기술 발전의 자장 안에서 이루어졌다. 최근에 와서는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도 비언어적인 사고의 중요성이 크게 부상하고 있어서 디자인이 기술을 구성하는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분야들 사이의 상호 교류와 비언어적 사고가 중요시되면서 예술과 과학기술은 기존과는 다른 융합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과학기술은 예술의 원천이 되고,
예술은 과학기술에 영감을 제공한다.”
새로운 상상력과 미학으로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 문제에 있어 기존과는 다른 유형의 예술가들을 호명하고 있다는 건 자명하다. 거기에 맞는 상상력, 또 다른 미학이 요구되는 건 물론이고, 전통 미의식 자체를 수정하는 일도 불가피해 보인다. 가령, 미디어 아트의 경우 세계관을 표현하는 예술이 미디어가 펼쳐줄 세계까지도 예상해야 하는 과제가 함께 간다. 그렇지 않을 경우 최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구매해 보여주는 일 이상이 되기 어렵고, 예술이 기술에 잠식당하는 관계가 되기 쉽다. 이렇듯 예술과 과학기술이 밀접해졌어도 여전히 둘 사이의 긴장은 남아 있다. 과학기술을 단순히 도구주의적 관점으로 보지 않고 역사와 의미를 되짚어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해서이기도 하다. 즉, 이 융합의 시대에 예술가는 과학기술을 알아야 하고, 과학기술자는 예술을 이해해야 한다. 미학자들은 둘이 서로 접속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면서, 새삼 인문학의 중요성을 더불어 강조하기도 한다. 예술과 과학기술을 매개해주고 예술가와 과학기술자들에게 서로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것이 곧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작품은 당시 텔레비전을 발명한 기술자조차 생각지 못했던 쌍방향성을 보여줌으로써 기술 발전을 촉진하고 비디오 시대를 여는 데 영감을 주었고, 동영상 촬영 기능이 탑재된 휴대폰을 손에 쥔 예술가는 그것으로 표현 가능한 잠재성을 다 펼쳐서 영화를 찍는다. 예술과 과학기술의 관계는 이처럼 다시 ‘테크네(Techne)’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로 통합된 의미로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긴밀히 접속하면서도 대등하게 긴장을 놓지 않는 유기적 관계로서 말이다.

관련 전시
  •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또 다른 시작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또 다른 시작
일시 2018년 5월 26일~9월 16일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6/7 전시실, 미디어랩

1960년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E.A.T.(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의 주요 활동을 조망하고, 4차 산업혁명시대 융합 예술의 가능성을 성찰할 목적으로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E.A.T. 관련 작품 33점과 단체 활동과 작업 등을 아카이브한 100여 점이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