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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8 2018. 12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칼럼 김혼비 에세이스트

축구와 함께 건너는 글 쓰는 시간

2018. 10
축구와 함께 건너는 글 쓰는 시간

111년 만의 폭염이 덮친 여름이었다. 연달아 열린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서 11명의 주전선수들이 열 번의 중요한 축구경기를 펼친 여름이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갈 수 없었던 폭염과 놓칠 수 없었을 축구가 겹친 여름은 지나치게 뜨거워서 나는 계속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여름이 지나면 결국 꺾일 폭염을 떠올리면 잠시나마 시원했다. 대회가 끝난 후 다시 무관심 속으로 사라질 축구를 떠올리면 씁쓸하다가도 차라리 속 시원했다. 평소에 한국 프로축구, 그러니까 K리그에 별 관심이 없었으면서 4년마다 만기가 돌아오는 적금이라도 들어놓은 양 승리를 내놓지 못하면 축구와 선수에 대해 함부로 하는 말들이 그칠 테니까.

언론 매체와 사람들 대부분이 손흥민과 군 면제를, 황의조와 해트트릭을 외치며 아시안게임 축구 8강전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던 그 시간, 나는 성남시에 있는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다른 축구’를 봤다. 같은 축구지만 관심도 열기도 관중 수도 너무나 다른 세계의 축구. 고작 천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진 성남FC와 부천FC1995의 경기는 성남FC가 극적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2대 1로 이겼다. 나는 엄청난 희열에 휩싸여 제자리에서 마구 뛰다가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고, 내 목은 잔뜩 쉬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쏟아지는 아시안게임 기사들을 피해 그날 열린 K리그 경기 기사들을 샅샅이 찾았다. 그마저도 몇 개 없어서 한 기사를 두 번씩 읽었다. 집에 와서는 이미 본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다섯 번씩 돌려봤다. 돌려볼 때마다 목은 더 쉬었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축구’를 하러 갔다. 축구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아마추어 여자축구팀에 입단해서 축구를 직접 하기 시작한 지 벌써 3년 반째다. 요즘은 리프팅(발, 넓적다리, 무릎, 가슴, 어깨, 이마 등의 신체 부위를 이용해서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튕기는 것) 100개를 목표 삼은 탓에 수없이 공을 떨어뜨리고 잘못 맞아 튕겨 나가는 공을 줍느라 연습이 끝나고 나면 유니폼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땀에 젖는다. 내 옆으로는 역시 땀에 흠뻑 젖은 우리 팀 선수들이 공이 닿는 순간 이 땅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온몸으로 공을 받아내며 땅을 지켜내느라 축구장을 횡으로 종으로 휘젓고 있다.

월드컵과 월드컵 사이, 올림픽과 올림픽 사이, 아시안게임과 아시안게임 사이에 흐르는 무심하고 냉담한 시간 속에서 점점 인기도 떨어지고 망해가는 리그를 열렬히 응원하며 축구를 직접 하는 것과 이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쇠락해가는 출판계의 언저리에서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내가 아끼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와 애정을 쏟아붓고 있는 이 두 종류의 일이 나의 어떤 특정 기질에서 갈라져 나온 배다른 자매 같은 것인지, 전혀 다른 기질에서 나왔으나 우연히 운명처럼 만나 의기투합한 의자매 같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궤를 같이하며 나를 움직인다.

글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만드는 일은
골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드리블을 하고 패스를 하는 일과 비슷하다.
매 순간 실책의 위험이 예비되어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걸 겹겹이 가로막는 수비수들이 버티고 있다.

뭘 써야 할지 막막할수록 유독 새하얗고 커다랗게 느껴지는 노트북의 빈 화면을 보고 있자면 ‘나는 대체 힘들게 글을 왜 쓰지?’라는 진한 회의가 밀려든다. 글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만드는 일은 골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드리블을 하고 패스를 하는 일과 비슷하다. 매 순간 실책의 위험이 예비되어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걸 겹겹이 가로막는 수비수들이 버티고 있다. 힘겹게 썼던 걸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우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원론적인 고민에도 부딪힌다. 요즘 같은 세상에 긴 글을 몇 명이나 읽을 거라고. 글에 무슨 힘이 있을 거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축구장을 떠올린다. 한 줌도 안 되는 K리그 팬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모여 앉아 선수의 이름 하나하나를 연호하고 목이 쉴 때까지 소리치며 응원하는 축구장을.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저 패스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공격의 시작점이었는지를 알아보고, 실책 하나에 마음이 내려앉아 의자에 주저앉고, 그러다가 겨우겨우 들어간 골 하나에 울고 웃으며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는 우리들만의 조용하지만 치열한 리그가 펼쳐지는 축구장을. 팀이 계속 부진해서 질 게 뻔한데도 축구경기가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앉아있는, 때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긴 시간을 내달려 단 두 시간이라도 굳게 앉아있는 축구장을.

그러고 나면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내 엉덩이에 조그마한 힘이 들어간다. 오늘도 높은 확률로 질 게 뻔한데도 어김없이 잘 앉아있구나. 세상 어딘가에는 아직도 긴 글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 응원하는 한 줌의 사람도 있을 테고, 이 글을 마주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몇 번의 수정 끝에 골라낸 이 문장 하나를 알아봐 줄 사람도 있을 테고, 다 읽고 어떤 방식으로든 손에 쥐어지는 작은 힘을 얻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골도 못 넣고 물러나더라도 어떻게든 골대 앞까지 패스를 이어보려고 다리를 뻗는 선수들처럼 문장과 문장을 이어서 가볼 수 있는 데까지 가보겠다는 결심과 함께 머릿속 축구장에서 다시 돌아온다.

더 힘이 되는 것은 아무리 연습해도 될 것 같지 않던 축구기술을 몸에 익혔을 때다. 지금 석 달째 리프팅 연습 하나에 매달리고 있는 것처럼, 어떤 기술은 마스터까지는 바랄 수도 없고 그저 한 번 성공하는 데만도 몇 달이 걸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태곳적부터 도구를 다루는 데 특화된 손을 놔두고 신체구조학적으로도 굳이 서툴고 허술한 발을 손처럼 써보겠다고 그 복잡하고 어려운 훈련을 감수하는 무모함이라니. “손쉽다”라는 말은 있어도 “발쉽다”라는 말은 없는 이 세상에서 발로 무언가를, 그것도 어려서부터 축구를 한 사람도 아니고 30대 중반에 들어서야 축구를 시작한 사람이 하려는 것은 매우 고난도의 도전 아닐까.

그런데 놀랍게도 하다 보면 결국 된다. 수천 번 수만 번 연습 끝에 마구 튕기던 공을 발로 탁 잡아 올리는 데에 성공하거나 마음먹은 대로 공이 쫙 뻗어 나갈 때의 기분이란!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지는 걸 몸으로 체험하는 원초적인 경험은 머리로 체험하는 성취와는 생생함의 강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고,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뭐가 되긴 된다는 경험이 쌓이면 이 에너지가 일상으로 흘러와 묘한 용기로 이어진다. 기술과 함께 성공의 감각이 몸에 새겨지는 것이다.

글을 쓰다가 어딘가에서 꽉 막혀 도저히 풀 엄두가 나지 않는 날에 축구공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커다란 이유다. 몇 달 전만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인사이드킥을, 아웃사이드 드리블을 한바탕 하다 보면 잠시 잊고 있던 그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그러고 나면 노트북 앞에 앉아 다시 글을 붙들 용기가 생긴다. ‘뭐가 됐든 발로 하는 것보다는 쉽겠지!’라는 호기로운 허세도 부리면서.

엊그제도 나는 축구장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천 명에도 훨씬 못 미치는 350명 정도가 모였지만 가물거리는 반투명의 벽을 만들며 쏟아지던 폭우를 생각하면 350명이나 온 것이다. 어제는 군데군데 비가 고인 축구장에서 우리 팀 선수들과 함께 리프팅 연습을 했다. 100개의 1/4도 안 되는 23개밖에 못했지만 7개를 했던 2주 전을 생각하면 23개나 한 것이다. 망해가는 리그를 열렬히 응원하며 누가 시키지도 않은 축구를 직접 하는 것. 사라져가고 빛바래져 가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 온 마음을 정성스레 쏟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모여 나의 글이 만들어진다. 막막한 시간을 지나 느릿느릿, 하지만 결국, 만들어진다.

  • 김혼비 에세이스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저자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