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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1 2016. 4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인터뷰 주성진 기획위원

가보지 않은 길의 지도를 만드는 일   1

2016. 4

예술인 복지뉴스 인터뷰 섹션의 첫 인터뷰이는 2014년부터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기획에 참여한 주성진 기획위원이다. 올해 3년차로 접어드는 파견지원 사업의 시작부터 소소한 과정을 함께한 만큼 사업 전반과 현장 상황, 참여 예술인과 기업·기관들에 대해 들려줄 이야기가 많을 거라 예상했다. 글 김지승 / 사진 이현석

주성진 기획위원 사진

지난해 총 190개 기업·기관에 498명의 예술인을 파견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은 올해 300여 개 기업에 1,000여 명 파견으로 확대 운영될 예정이다. 관련 예산도 74억 4천만 원으로 증가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관련 사업 계획이 보도되고 며칠 후, 주성진 기획위원을 만났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이 시행된 배경과 사업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일자리 박람회의 구체적 운영 등 예술가들이 궁금해할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이 시작된 배경이 궁금하다.

예술인 복지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던 시점에 최고은 씨 사건이 있었다. 관련해 다소 급하게 법이 만들어지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생겼다. 그래서 재단이 만들어지고 나서도 “왜 예술인만 별도의 복지 시스템이 필요한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과 논의가 계속 이어졌다. 예술가들의 직접적인 생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사업들을 일차적으로 진행하는 동안에도 예술인복지재단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고민은 두 가지 방향의 질문으로 좁혀졌다.

첫 번째는 ‘문화예술인의 복지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하는 거다. 결국 문화예술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이 알게 하는 것이지 않겠느냐는 결론에 다다랐다. 문화예술을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으로 만들면 예술가들이 살아갈 길이 확보될 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예술가들이 본연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일, 혹은 그 역량을 키워나가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였다. 다수의 젊은 예술인들에게 생계를 위한 활동과 창작을 위한 활동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편의점이나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짬을 내서 작업에 임하는 작가들이 많았고, 자연히 작업에 열중하기는 힘든 상황이었으며, 삶과 작업의 괴리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 두 가지 방향으로 질문하고 숙고했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고,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기업·기관처럼 문화예술의 잠재적인 수요자에게 문화예술의 가치와 효과를 입증하는 과정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단은 통역사와 같은 역할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업·기관도 끊임없는 혁신이 과제가 되었다. 혁신을 위한 창의성, 그리고 창의성과 연결된 문화예술에 관심이 높아졌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막상 기업이 예술가들과의 (기존의 고용 방식이 아닌) 협업을 진행하고자 할 때, 당면하는 문제들이 있다. 가장 많이 부딪히는 두 가지 문제는 정확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과, 어떠한 예술가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하여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예술가와 기업·기관은 언어가 확연히 다르다. 서류 작성을 위한 언어와 예술작품 설명을 위한 언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 사이에서 재단이 통역사 같은 역할을 하면서, 기업에는 혁신의 기초가 되는 창의성을 예술가들과 함께 실험해 볼 기회를 주고, 예술가들에게는 무대를 넓히고 생계와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업을 설계하게 되었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증명하고 확산시키는 것이다. 가장 큰 목표다. 그렇게만 되면 예술가들이 자신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부업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두 번째 목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부업이라고 표현하는 건, 그분들의 본업이 예술이라는 게 중요하고 늘 존중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이것도 결과적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우리나라의 기업·기관이 문화예술에 기반을 둔 창의성을 통해 혁신을 이루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일자리 박람회가 개최된다. 사업의 취지와 일자리 박람회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사업이 진행되면서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예술가와 지원사업을 거부하는 예술가 사이의 경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지원사업이 대부분 작가를 ‘사람’으로 보고 지원하기보다는 작가가 만드는 결과물 혹은 지원 효과에 집중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은 기존 지원사업의 틀에 익숙해진 작가분들이 참여해서 성과를 만들기 어려운 사업이다. 그래서 지원사업에 대해 다소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작가분들에게 사업을 알리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추동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하였다.
기업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 또는 공동작업이 ‘예술가를 후원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주된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술가를 지원하는 사업들이 정작 ‘예술가’를 지원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이 궁극적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삶, 문화예술의 가치 자체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예술가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분들이 많고, 이런 사업 철학을 전할 수 있는 어떤 큰 이벤트가 필요했다.

일자리 박람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예술가들의 작가적 상상력은 훌륭하지만, 기업·기관의 산업, 행정 등과 연결해서 상상력을 구체화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일자리 박람회를 통해 그러한 연결 모델들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가령, 첫해에는 기업을 먼저 모았는데 예술가들이 기업 부스에서 대화에 참여하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이러한 아이디어와 소통의 장으로서의 목적이 있다.

올해 일자리 박람회는 300여 개 기관을 모집하고 1,000여 명의 예술가를 지원할 계획이다. 첫해는 4분의 1 규모였지만 기업·기관과 예술가를 매칭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매칭 과정에 석 달 정도가 걸렸다. 그게 첫해 사업의 가장 큰 시행착오이자 교훈이었다. 예술가를 위한 사업이기 때문에 기업의 일방적인 필요성에 따라 예술가를 파견할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예술가가 원하지 않는 곳에 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앞서 얘기한 작업과 괴리된 아르바이트 일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의 니즈와 기업·기관의 니즈를 맞추고 합의하는 과정이 너무 오래 걸렸다. 가령, 양쪽 니즈가 100개씩만 있어도 매칭 가능한 경우의 수는 10,000건이 된다. 또 예술가나 기업의 선호도가 특정 대상에 쏠릴 수도 있다 보니 이 과정을 예술가와 기업·기관이 직접 만나서 조율할 수 있는 박람회 같은 형식이 필요했다.

3년 차로 아직 사업 시작단계라고 할 수 있다.
기획단계에서 미처 예상 못 했던 일들을 하나둘 발견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할 것 같다.

이제 3년 차다. 사업 초기 단계에서 조급함이 컸다. 선의로 만든 사업이고, 사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선의를 이해하고 함께하는 많은 분들의 희생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 분들 때문에라도 또, 지원사업의 성격상 최대한 빨리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그래서 쉬운 길을 택했던 것 같다. 가능한 대기업을 참여시키면, 예술가들 역시 유명한 예술가들이 함께하면 성과가 빨리 알려질 것이라 예상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대기업과 기관 역시 그 나름대로 성과를 보여주었지만, 생각보다 작은 현장들에서도 훌륭한 성과가 나왔다. 무엇보다 예술가와 기업의 협업이라는 것이 몇 건의 대표사례를 만들어 여러 곳에서 반복·확산시킨다고 작동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000명의 다른 예술가에게는 1,000개의 다른 해피엔딩이 있어야 한다.

참여 기업·기관의 경우 주로 어떤 부분에서 성과가 있었나?

사람과 관련된 부분 즉, 조직문화와 인력개발 쪽에서 확실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업·기관 입장에서는 어쨌든 새로운 사람이 그 조직의 한 요소로 더해지는 것이다. 인력개발에 투자하는 기업·기관이 늘고 있는데, 내부 구성원들은 그 투자의 목적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나한테 투자하는 이유를 아는 거다. 그래서 효과가 감소하거나 거부감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
예술가가 기업·기관에 들어가서 하는 일은 역량 강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프로세스와는 많이 다르다. 보통 이루어지는 프로그램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생활 주변에서 생각할 거리를 찾게 하고, 함께 일하는 조직인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것들이 많다. 자연히 자기 외부를 관찰하는 시야와 자기 내부를 바라보는 성찰의 깊이가 달라진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생산성으로 바로 연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증명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해서 갑자기 상품 제조량이 늘거나 판매량이 느는 게 아니다. 그러나 기업·기관의 참여자들은 변화를 몸으로 느낀다. 일터가 더 즐거운 곳이 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사람’으로 다시 이해하게 되고, 기업은 다시 공동체성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참여 예술가들의 변화도 궁금하다.

참여 예술가들의 장르가 다양한 편이다. 미술, 문학, 음악 분야도 있지만 건축이나 만화, 전통예술, 대중예술이 다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작업실에서 자기 작업만 하던 분들이다. 이분들이 처음 기업·기관에 가서 일정 시간 다른 경험을 하면서 자기 작업에 변화가 생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관계가 변하면 작업이 변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아틀리에에서 작업만 하던 중년의 한 예술가는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다른 작가들과 협업하고 기업의 언어를 배우고 파워포인트를 배우면서 지역에서 다른 사업 공모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제안서를 제출해보고 스스로 또 다른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가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업 후 새로운 프로젝트팀으로 활동하기도

한 기업·기관에 예술가 2, 3명, 많게는 7, 8명이 파견된다. 협업을 하기 때문에 다른 장르 간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시너지가 날 수 있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발견한다. 사업이 끝나고 나서도 함께했던 분들이 팀을 꾸려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사업으로 예술 활동을 하고, 경제적 도움도 받는다는 면에서 정서적 안정과 자존감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사업에 참여하기 전, 실제로 예술 활동을 포기하려고 했던 분들이 사업에 참여한 후에 동력을 얻어서 다시 개인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 예도 적지 않았다.

(5월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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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진 기획위원 ·프리랜서 문화기획자 〈문화용역 주성진〉
    ·코리아문화수도 시흥 조직위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14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PM/멘토
    ·(주)메타기획컨설팅 팀장/선임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