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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2 2016. 5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인터뷰 주성진 기획위원

가보지 않은 길의 지도를 만드는 일   2

2016. 5

지난 호에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이 시작된 배경과 진행 현황, 〈예술인 파견지원 만남의 광장(일자리 박람회)〉의 성과 등을 돌아본 데 이어 구체적인 현장 사례를 중심으로 사업 전반을 살피고, 2016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이 갖는 의의와 변화, 지향점을 들어본다. 글 김지승 / 사진 이현석

주성진 기획의원 인터뷰 사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서 참여 기업·기관과 예술인의 매칭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첫해에는 양쪽 기획서를 하나하나 맞춰보고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예술가의 의지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인데, 시행착오를 겪은 후 2015년에 퍼실리테이터 제도를 도입했다. 전국에서 선발된 퍼실리테이터가 자신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이용해 지역에서 니즈가 있는 기업·기관들을 리서치해오면, 예술가들이 우선순위의 희망 기업·기관들을 신청하고, 퍼실리테이터가 양쪽 기획서를 교차 검토 후 매칭을 진행했다. 올해부터는 〈예술인 파견지원 만남의 광장(일자리 박람회)〉 현장에서 예술가와 기업·기관이 직접 논의한 후 전산 시스템을 통해 매칭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더욱 합리적인 매칭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물론이다. 사업적으로 기록되지 않거나 검증할 수 없는 업무가 많지만, 퍼실리테이터들이 현장에서 쏟아부은 계약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사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올해는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작년의 경우, 60여 명의 퍼실리테이터가 6명씩 한 조가 되어서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구조였고 재단에서도 중요한 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올해는 200여 명의 퍼실리테이터를 포함한 1,000명의 예술가가 현장에서 활동한다. 재단에서 각각의 현장에 개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올해 사업에서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에 변화가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그동안 3~4개 기업·기관의 현장을 맡아 관리자에 가까운 매개자 활동에 집중했다면, 올해부터는 1개의 기업·기관만을 담당, 3~4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직접 활동에 참여하면서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2015년 사업에 참여한 기업·기관과 예술인 통계를 보면 지역적으로는 서울 수도권에,
예술 장르로는 미술에 쏠림 현상이 있다.

지역 편중 현상은 여러 조건이나 상황적 한계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런 것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늘 고민한다. 문체부나 중소기업청 등 상위기관이 가진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서 사업을 더 알리고, 지자체를 통해 홍보활동을 지속하고, 특수 목적이 있는 지역 현장을 묶어서 접근하고 있다. 지역 예술가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 가령 지역 특산물 브랜딩에 예술가가 결합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거리나 비용을 감수하고 지역에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예술가들이 있다는 거다.

장르보다 예술가의 본질적 접근이 중요

장르 편중의 경우,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 프로젝트가 시작된 다음에는 장르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기업·기관이 예술가의 개입에 기대하는 건 대개 ‘그들이 무엇을 만들어줄 것인가, 만들어진 결과물이 우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줄 것인가?’이다. 하지만 프로젝트 과정 동안 예술가들이 발견하는 문제 원인과 개선 방식은 다르다. 다양한 감각과 상상력을 통해 개개인이 인지하고 변화하는 계기를 만들고, 나아가 전체 인식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과정에서 개입하는 감각이나 감수성, 상상력 등은 장르를 넘어 모든 예술가들이 지닌 본질적인 부분이다.

매칭 후 현장에서 예술가가 주로 느끼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현장에서는 늘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기업 문제로 약속된 지원이 취소되거나, 반대로 기업 상황이 좋아져 직원들이 너무 바빠지는 바람에 예술가들이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던 경우도 있다. 농업 지역 특산물 브랜딩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예술가는 바쁜 농번기에 회의를 할 수 없어서 한 달 동안 채소 상자를 나르면서 의견을 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예술에 대한 기능적 접근 곤란

이 밖에도 내부 정보의 접근권 문제,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이나 활용 범위 등 다양한 문제가 많았지만, 무엇보다 아직도 예술을 기능적으로 접근하는 인식이 만드는 어려움이 있었다. 가령, 디자이너를 고용해서 진행해야 하는 작업을 이 사업을 통해 해결하려 하는 등 기업 내에서 경제적 대가를 지급하고 해결해야 할 일을 사업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올해는 기업·기관의 사업 담당자를 대상으로 교육이나 워크숍 과정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예술가들이 현장에서 공통으로 겪는 문제들을 목록화하고, 각각의 문제에 적용 가능한 솔루션이나 적용 가능한 프로그램 모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예정이다.

기업·기관에서는 예술가들에게 어떤 지원을 하고 있나?

기업·기관의 지원은 권유사항이기 때문에 천차만별이다. 예술가 활동비를 재단에서 100% 지원한다고 해도 기업·기관에 사업 관리 인력이 있어야 하고 누군가에게는 추가 업무가 생긴다. 이 사업 담당자의 사업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물질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사업을 잘 이해하고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적절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담당자가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최고 결정권자가 사업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추가 업무에 대한 어드벤티지를 제공할 경우 사업 결과가 좋았다. 실제로 2015년 결과를 보면, 사업과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은 기업·기관일수록 참여예술가들에게 다양한 지원이 이어졌고 작업 범위나 방식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하면서 상호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아카이빙과 스토리텔링 분야에서의 신규 수요 창출을 사업 결과의 하나로 꼽았다.

서류 기록과 저장 방식은 회사마다 고정되어 있지만, 시스템 부족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저장 및 활용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천 탁주 사례를 들 수 있겠는데, 11개 회사가 합병된 후 각 회사의 주요 역사나 과정에 관련된 기록이 없거나 흩어져 있었다. 방송작가, 미술가, 음악가가 회사 브랜드 스토리 작업에 참여하면서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없는 자료는 퇴직한 분들을 찾아 인터뷰하며 기록해나갔다. 그림을 통해 역사를 재현하기도 하고, 병 디자인의 변화를 새롭게 구현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기도 했다. 막걸리가 익는 소리를 사운드 아트로 기록하고 술병에 QR코드를 부착해 재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결과적으로 기업이 굉장히 만족하는 스토리북을 만들어냈다. 이런 작업으로 얻은 자료들을 공장 내에 박물관을 만들어 전시하면서 아카이빙이 되었다.

낯선 존재가 만드는 변화와 자극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은 어쨌든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분들이다. 시인 한 명이 회의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회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똑같은 구성원들이 앉아서 ‘자, 이제부터 혁신을 위해 창의적인 생각을 해보자!’ 한다고 해서 금방 창의성이 생기는 게 아니다. 새로운 사람, 낯선 존재가 함께하면서 묘한 균열과 긴장을 만들어내고 개개인에게 좋은 자극이 되어 변화를 이끈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런 과정과 변화가 지금까지 증명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아카이빙과 스토리텔링 분야 이외에도 프로젝트마다 다양한 결과물이 나온다. 그것들이 곧 대규모 제작이나 보급까지 이어지기에는 사업 기간이 짧다. 한 해 사업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끝을 보긴 힘들지만 어떤 모델들의 가능성과 매뉴얼이 생기고 사회적 공유가 이루어지면 관련 업체에서 개발을 제안하거나 공익광고, 캠페인 차원의 접근도 가능해진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결과가 아직 미미하더라도 이러한 시도가 또 다른 시도로 이어지고 쌓이면서 다양한 변화로 확장되고 있다.

2016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

작년까지는 사업의 개념을 만들고 가능성을 실험하는 단계였다. 때문에 사업의 규모나 성과보다는 사업의 논리, 구조, 역할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많이 이루어졌다. 행정가와 현장의 예술가, 그리고 기획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논의체가 꾸준하게 작동하였고, 그것이 사업 참여예술가들의 노력과 맞물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근간을 마련했다.
2016년은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시즌 2의 시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본격적인 확산 단계로 접어들었으며, 사업의 규모도 크게 확장되었고, 사업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한 시스템도 여러 면에서 보강되었다.

본연의 목적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

확산 단계에서 변질되거나 좌초된 지원 사업들이 적지 않다는 걸 고려하면 특히 올해는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서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사업 규모 확대에 따른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내외부의 요구도 커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 필요에 부합하는 사업인 만큼 기업·기관의 문제를 예술의 힘으로 해결하고, 예술가 개개인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양질의 부업을 제공함으로써 예술의 가치와 효과를 공유한다는 사업 본연의 목적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예년보다 훨씬 다양한 사업 성과들을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사업 주체인 참여예술가와 기업·기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사업 자체를 여행처럼 생각하면 좋겠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 우연한 만남이 되기도 하고, 추억이 되고, 다음 여행의 씨앗이 되기도 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조금 천천히 걷는 여행처럼 접근하길 바란다.
아직 이 사업을 접하지 못한 예술가들에게는 시험 삼아 한 해만 참여해보라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지원 사업처럼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도 예술가에게 기업가 정신, 자기경영 능력, 서류 작성 능력 등을 강요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모든 예술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경험이 예술가 개인 작업에 새로운 접근 방식이나 영감을 줄 수 있고, 작가들끼리 협업을 할 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경험해보고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조금씩 더 세밀해지는 지도

작가 활동 기간은 6개월, 퍼실리테이터가 8개월이다. 그 안에 작업을 끝내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 작년에도 사업의 공식 일정이 끝난 이후 작가와 기업이 별도로 추가 계약을 해서 작업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었다. 굉장히 이상적인 예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현상적 목표라면 추가 계약이 발생하는 것이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늘고 있다. 협업의 선례가 쌓이면 기업·기관이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술가들과 한 번 작업해봐야겠구나’ 생각할 수 있고, 주변에서 적절한 사례들을 연결할 수 있게 된다. 즉, 예술에 대한 관심의 확산, 예술가와 기업·기관이 만나는 장의 확장을 통해 가보지 않은 길의 지도를 조금씩 더 세밀화하는 것이다. 많은 예술가와 기업·기관의 참여를 기대한다.

  • 주성진 기획위원 ·프리랜서 문화기획자 〈문화용역 주성진〉
    ·코리아문화수도 시흥 조직위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14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PM/멘토
    ·(주)메타기획컨설팅 팀장/선임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