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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복지뉴스

대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윤영달 이사장

예술인의 창신력(創新力)을 지지합니다

2018. 12

한국 제과산업 역사의 산증인인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이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건 지난 6월, 이후 그의 오랜 예술 애호와 경영에서의 예술적 시도가 새삼 다시 회자되었다. 특히 그의 남다른 국악 사랑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2004년부터 국내 최대 국악공연인 ‘창신(創新)제’를 개최하고, 2007년 민간 기업 최초 국악 관현악단을 창단해 ‘락음(樂音)국악단’을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그의 관심과 애정은 일회성 지원이나 거창한 행사 몇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2008년에는 최정상급 국악 명인 공연 ‘대보름 명인전’을, 2010년에는 양주풍류악회와 함께 해외에서 펼치는 국악 공연 ‘한국의 풍류’와 국악 영재 발굴을 위한 ‘모여라! 국악영재들’을, 2013년부터는 매년 광화문에서 열리는 아리랑을 주제로 한 ‘아리랑페스티벌’ 등을 지금까지 꾸준히 운영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2015년에 시작된 ‘영재국악회’와 2016년부터 열리게 된 조각전시 ‘견생전(見生展)’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글 김지승 사진 이현석

대화

작가들의 아틀리에와 조각 체험장 등으로 구성된 경기도 양주의 아트밸리에 있는 윤 회장의 집무실은 마치 발명가의 실험실 같았다. 책상 한쪽으로 명확한 기능이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모빌 종류들이 보였고, 책상 옆 보조 테이블에는 개발 중인 과자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집무실 중앙에 넓은 통로를 만들며 놓인 진열장에는 전 세계에서 윤 회장이 가져온 기념품, 아이디어 상품, 책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얼핏 과자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물건들이었는데, 윤 회장은 이런 것들을 연결하고 해체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집무실을 오가는 직원들도 사고를 환기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산에서 우연히 듣게 된 대금 연주 소리로 국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크라운제과가 부도를 맞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일입니다. 막막함과 책임이 무게에 짓눌려 북한산에 올랐다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만 반했어요. 그땐 그게 대금 소리인지도 몰랐는데 마음이 무척 평온해졌습니다. 그때부터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대금을 직접 배우면서 국악계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설 수 있는 무대가 사라지고 인재 발굴도 요원했어요. 명인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국악을 접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동시에, 국악 공연을 개최해 영업 점주들을 초대한 걸 계기로 본격적으로 경영에 예술을 접목하게 되었습니다.

창신제, 대보름 명인전, 견생전, 영재국악회 등 정말 많은 공연과 전시를 개최하고 지원하시더라고요.

모든 예술 장르를 지원하진 못하니까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은 것부터 하나씩 해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야 그림, 연극, 오페라, 클래식 연주 등 다양한 장르를 접하고 좋아하죠. 한동안 오페라에 빠져서 국내외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보러 다닌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무대를 만들 거나 사람들과 연결하는 자리를 만드는 건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음악에서는 국악, 미술에서는 조각, 문학에서는 시를 우선 지원하고 있는데 순수한 지원만은 아닙니다. 제과산업은 문화 산업입니다. 문화 경쟁력이 바탕이 되어야 해요. 국악을 배우거나 조각가들과 얼음 조각을 경험해보는 기회가 직원들에게 주어지면서 문화 경쟁력을 높이는 거거든요.

  • 크라운 해태제과 대표과자들 크라운 해태제과 대표과자들
  • 윤 회장이 지원하고 있는 공연과 전시회 홍보물 윤 회장이 지원하고 있는 공연과 전시회 홍보물
메세나(Mecenat,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을 통한 사회 공헌 활동)만은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그렇게 포장하기에 좋긴 한데(웃음) 문화예술 활동을 기업이 한 방향으로 후원하는 단계를 넘어서야 기업과 예술이 상생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희가 후원한 국악 공연을 경험한 사람들의 감동이 회사 이익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원사업이 임직원들에게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굉장히 큽니다. 더 나아가서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는 예술인들에게만 좋은 일이 아닙니다. 보이진 않지만 예술인들의 창신력에 의지하고 있는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 좋은 일입니다. 거기에 일조할 방법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려고 합니다.

창조력 대신 창신력이란 표현을 쓰시네요.

창신력(創新力,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좀 더 구체화된 느낌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중국에서 인상적으로 들은 말입니다. 그곳에선 ‘창신’이란 말을 더 익숙하게 쓰더라고요. ‘창신제’도 거기에서 따왔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예술인 창신력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일이 아니다 보니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예술인의 창신력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을 언급하는 윤 회장의 창신력도 제과업계에서는 손꼽힌다. 지난 40년간 15억 개가 판매된, 모르는 사람이 드물 죠리퐁은 1972년 윤 회장의 숱한 노력 끝에 탄생했다. 유학 시절 미국인들이 먹던 시리얼과 한국인의 과자라고 할 수 있는 뻥튀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버터와플도 윤 회장의 작품이다. 그는 네덜란드산 낡은 와플 기계를 들여와 개조하는 노력으로 버터와플 생산라인을 직접 설계했다. ‘과자도 조각품’이라고 생각하는 윤 회장이 쿠크다스에 초콜릿으로 S자 형태의 물결무늬를 그려 넣으면서 밋밋해 보이는 과장에 율동감을 살리자 월매출이 150% 이상 상승하기도 했다.

그의 창신력이 발휘되는 건 과자만이 아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한쪽에 높이 쌓인 작은 보조의자들이 눈에 띄었는데 영재국악회의 어린이 관객들을 위한 보조의자를 개발 중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러 번의 기능 수정을 거쳐 아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쓸 수 있는 시제품을 완성한 상태다.

대화 영재국악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수준 높은 국악 시장이 형성되는 게 가장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만들 방법이 없다는 게 큰 문제인데요, 30, 40년 후에 영재국악회 참가 어린이들 사이에서 명인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영재국악회를 관람한 아이들이 국악을 경험하면서 갖게 되는 관심과 애정이 당장은 아니어도 한국 국악 장르의 안정과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하는 일입니다. 한 번에 출연하는 아이들이 100명 정도 됩니다. 정말 너무너무 잘해요. 잘 못해도 예쁠 텐데 잘하니까 안 예쁠 수가 없지요. 2017년부터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열리는데 300석 규모에 어린이 관람객이 점점 많아져요. 4, 5살 아이들도 관람객으로 많이 옵니다. 그 아이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보조의자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 대화
“과자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어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다양한 시도 속에서 저는 예술을 만났습니다. 절체절명의 경영 위기를 겪었던 시절에 우연히 대금 연주를 듣고 마음을 치유하게 된 경험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좋은 식재료로 만든 맛있고 건강한 과자를 만드는 일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과자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 속에서 크라운해태의 예술경영, 즉 ‘AQ(Artisitic Quotient) 경영’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 윤영달 저, 과자는 마음이다(2018, 지에이북스)중
아트밸리에 조각가들이 입주해 작업을 하고 있죠?

2012년 11월에 개관한 조각 스튜디오에 스무 명 정도의 입주 작가가 머물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조각 스튜디오는 해외 작가 단기 레지던스나 조각 심포지엄 공간으로 활용이 되기도 합니다. 2018 한국국제아트페어에 입주 작가 중 열 명이 초청되었습니다. 조각 스튜디오는 중간 성공 단계라고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세계적인 조각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할 생각입니다.

2016년부터 주최하는 조각전시 견생전(見生展)도 인상적입니다.

예술 지원은 지속적인 관심으로 사회적 관심까지 끌어낼 수 있는 활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확보되고, 전시할 더 많은 작품들이 필요해지고, 작업에 활기를 띠게 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여러 공간에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해왔는데요, 특히 2017년 세브란스 병원 곳곳에서 진행한 전시가 기억에 남습니다. 조각 작품을 보고 힘과 용기를 얻었다면서 환자가 직접 작품을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게, 일정 전시 기간이 지나 작품을 옮기면 시민들이 그 작품이 어디갔냐는 민원을 넣습니다. 애초에 거기에 작품이 없었던 시공간, 예술이 없는 일상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예술은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 일상의 틈을 벌리고 침투해 눈높이와 인식을 바꿔 놓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게 없는 세상이 이상해져요. 서울에 25개 구가 있고 경기도에 31개의 시와 군이 있을 때 한 군데에서 3개월 전시를 한다고 치면 10년 넘게 전시가 가능합니다. 10년이란 시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안길지 상상이 가나요?

윤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겪은 소회를 담은 책 『과자는 마음이다』에서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삶이다”라고 썼다. 예술은 삶에서 공기와 같은 것이어서 평소에는 예민하게 자각하지 못하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조각 공원에서 조각을 철수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놀라웠던 것처럼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 임직원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 예술적 몰입의 경험을 통해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기를 바랐다. 일상에 침투한 예술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는 그런 예술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으로서 한국의 예술인 복지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회의가 드는 부분도 없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우선 예술인들을 위한 재단이고, 사업이라고 하니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예술인들도 공정하게 인정받고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해보고 싶었습니다. 4차 산업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예술, 예술인들은 더 크고 중요한 무엇입니다. 예술, 예술인을 따로 지원할 만큼 그들이 특별한가 묻는다면 전 그렇다고, 특별히 대우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대답할 겁니다.

다만, 그 지원의 방향과 주력해야 할 부분에 더 세심해져야 할 겁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예술인지원사업을 실행하면서 관리·감독하는데 너무 많은 인력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면 정작 예술인들의 창신력을 지원할 여력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예술인에게도 좋지 않아요. 재단 직원들이 예술인을 위해 무언가를 연구하고 기획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길 바랍니다.

갈수록 고민이 많아집니다. 외국 사례들도 보면서 공부하고 열심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술인복지’재단이긴 하지만 다른 복지와 마찬가지로 예술인 복지는 정부 차원에서 폭넓게 지원해야 하고, 재단이 집중해야 할 사업은 궁극적으로 예술인의 창신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끝으로 예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술인으로서 예술인다운 프라이드를 갖길 바랍니다. 모든 분야에서 예술인만이 만들 수 있는 모범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유를 갖기 힘든 상황이더라도 그 프라이드를 지키면서 너무 다급하게 마음먹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한국의 예술 작업 환경이 좋지 않다는 걸 잘 압니다. 그러나 예술도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한 번에 목표 지점까지 날아오를 수는 없다는 것도 자명하지요. 조급함이 많은 걸 놓치게 만듭니다. 자신에게 충실히 시간을 차곡차곡 쌓는 기분으로 한 발 한 발 나가다 보면 분명 가 닿는 곳이 있을 겁니다. 예술인을 다급하게 만드는 여러 현실적 문제들은 재단에서 가능한 열심히 돕겠습니다.

예술인들은 자기만의 어떤 것에 몰입하고 집중하면서 내적 세계를 단련해나간다. 우리가 예술을 감상한다는 건, 그 황홀한 몰입이 한 예술인을 어디까지 데려갔는지 가늠해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예술인이 천천히, 가능한 원하는 만큼 멀리 가 닿을 수 있도록 재단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윤 회장은 계속 고민하고 예술인의 목소리를 경청해나갈 거라고 했다.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