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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

201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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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
나는 장애예술인입니다

'결여'를 창작의 자원으로 삼는다면,
장애인복지카드가 없어도 좋다

글 김원영 변호사

어린아이였던 시기 친구들과 뛰어다니지 못한 탓일 수도 있지만, 나는 늘 어떤 에너지를 온몸에 가득 안고, 폭발할 것 같은 마음으로 쉽게 잠들지 못했다. 열 살이 넘었을 즈음 집 안에 작은 농구대를 설치했고, 가구와 화분을 부수면서 친구들과 ‘좌식농구’를 했다. 온몸이 땀으로 찌들만큼 움직이자 한결 나았지만, 여전히 그 폭발할 것 같은 감각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학교에 가지 못했기에 낮시간을 혼자 보냈고, 그 시간 내내 (물론 앉아서) 농구를 하거나, 음악을 엄청나게 크게 틀어놓은 채 방 한구석에서 반대편까지 뛰고(당연히 기어서), 빙그르르 구르며 바닥을 휘젓고 다녔다.

다소 늦게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사물놀이를 했고, 작은 가요제에도 출전하다가 (마침내) 연극을 했다. 큰소리로 외쳐야 하는 첫 대사를 만났는데, 실제로 말하기까지 2주 가까이 걸렸다. 도저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사를 입 밖으로 내뱉었을 때,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태에 내가 도착했음을 알았다. 과거에 대한 무리한 해석인지도 모르지만, 분명 그 순간의 해방감은 내가 아무도 없는 작은 방 안에서 농구공을 집어던지고 바닥을 구르면서도 느껴야 했던 그 답답한 감각과 어느 정도는 이어져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몸을 움직이고 싶었을 뿐 아니라 ‘방 밖에서’, 즉 타자가 존재하는 세계 속에서 그들과 함께 소리치고 움직이고 싶었던 셈이다.

장애예술, 의료적 의미에서 나아간 경험의 재해석

장애예술이라는 말은 어딘가 이상하게 들린다. 어떤 창작자들은 자신이 그저 화가이거나 무용수이지 ‘장애인 화가’, ‘장애인 무용수’는 아님을 강조한다. 일리가 있다.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장애예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자신의 작업이 ‘장애예술’의 하나라고 밝힌다. 이는 ‘장애’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장애인복지카드로 증명되는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가지고, 국가의 인증을 받은 특정 인구집단으로서의 ‘장애인’에 주목하면, 왜 다 똑같은 창작활동을 하는데 굳이 복지카드 소지자라는 이유로 ‘장애예술인’으로 별도 취급되는지 분명 의문이 든다(게다가 장애라는 말은 거의 항상 부정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장애를 정신적, 신체적 손상이 사회문화적 실천들과 만나 구성되는 인간의 특정한 경험이라고 생각해보자. 여기서 장애는 의료적 의미만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어떤 것이기도 하다. 페미니즘 문학, 흑인 음악이 성립되는 이유는 해당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험과 그로부터 비롯된 감수성이 창작과정에 중요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장애예술을 말할 수 있다. 장애예술은 ‘장애인들이 하는 예술’이 아니라, 장애라고 하는 특정한 경험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창작의 주제의식과 방법론을 탐색하는 예술활동이다.

장애라는 경험이 만든 새로운 감각의 예술

나는 (예술가라는 말은 너무 민망하지만, 굳이 사용한다면) 스스로를 ‘장애예술인’이라고 말하는데 큰 거리낌은 없다. 내가 기획하거나 직접 참여하는 공연 등 모든 작업은 장애를 가진 어린아이에게 아무런 자유도 주지 못하던 시골 마을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시절 동안, 배움도 인간적 교류도 희미했던 시간을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와 싸우던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그간의 역사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마주했던 질문들, 타인으로부터 제기된 혐오들, 부당한 차별과 낙인에 대한 문제의식과 접속해 있다.

복지카드를 소지한 장애인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 모두는 장애라는 경험에 접속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감각을 얻을 수 있다. 청각장애인의 수어(手語)는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는가. 자폐성 장애인이 바라보는 사물들의 형태나, 시각장애인이 손과 귀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언어로 재현해낸 시각적 이미지는 어떻게 구체화 될까. 어린 시절부터 양손으로 바닥을 기며 살아온 지체장애인의 몸과 하루 종일 혼자이던 공간에서 어찌할 줄 몰라 보낸 시간들이 만든 움직임은 어떤 모습인가.

불행이나 비극의 상징으로 생각되던 우리 몸과 마음의 어떤 ‘결핍’, 혹은 그 결핍이나 결여를 바라보는 사회적 태도를 자원으로 삼아 창작활동을 한다면, 당신도 나도 모두 장애예술인이다. 장애인복지카드나 예술인 패스가 없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