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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5 2016. 8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칼럼 소설가 한지혜

한국에서 여성 예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논쟁은 사라졌지만, 현실은 남아 있다"

2016. 8
칼럼사진

얼마 전 한 문예지의 편집위원을 맡았다. 최근 몇 년 작가로서의 활동에 소홀했던 터라 편집위원이라는 자리를 맡는 일은 사실 내게 무모한 결정이었는데, 제안이 온 순간 흔쾌히 수락했다. 역할을 수행하려면 쓰고 읽기를 게을리할 수는 없을 터이니 그렇게라도 해야 작가로서의 정체기를 억지로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되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모든 자리는 무모하게라도 시도했을 때 한 걸음이나마 앞으로 나아갔다. 염려하고 망설이고 현실을 감안해서 이루고 성취한 일은 없었다. 결정을 남편에게 알리자 첫 반응은 걱정이었다. “아이는?” “글쎄, 아이는 어떡해야 하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놓지 않았다. 남편의 말을 따라 중얼거리며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생각해보면 문예지 편집위원에게 필요한 덕목은 문학의 시대적 흐름을 읽고, 비판하고, 묻혀 있는 혹은 소외된 작가들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능력이지 아이를 건사하거나 살림을 꾸리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로서 뭔가를 해야 할 때, 내게 그 질문은 늘 같은 무게로 다가온다. 비슷한 처지의 여성 작가들을 몇 명 알고 있다. 친정이나 시댁 혹은 이웃의 도움을 받거나 그도 안 되면 아이와 동반하기도 한다. 사인회에서, 강연에서 편집회의에서 엄마가 작가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한쪽 구석에서 숙제를 하는 것이다. 엄마로서도 작가로서도 뭔가 편치 않은 과정이다. 그나마 그렇게 동반이 가능한 경우는 그래도 운이 좋은 경우다. 그마저도 불가능할 때가 많다. 대신 돌봐 줄 누군가도 없고, 동반하여 움직일 수도 없고, 혼자서 집에 있으라고 할 수도 없을 때, 그런 순간이 오면 어떡해야 할까. 이제까지 나는 작가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포기하고 집에 남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답을 찾아서가 아니라 답을 고민하는 순간 또다시 포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기르는 작가는 많지만 아이 때문에 이렇게 오래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작가는 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일단 저질러 보고 싶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아이를 낳기 전 아니 결혼을 하기 전에도 작가로서의 삶이 쉬운 건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창작은 개인의 가치와 꿈의 영역이지 그 대가로 정당한 자본을 얻는 일은 아니다. 고정적인 수입과는 거리가 멀다. 일정한 생산량을 맞출 수도 없고 당연히 일정한 수입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창작과 무관한 노동을 통해 생계를 지속한다. 그러므로 전업 작가가 아닌 대부분 작가들의 삶은 한국에서 여성 노동자의 삶과 남성 노동자의 삶과 비슷하다. 한국에서 여성 노동자가 겪는 고용불평등의 현실과 여성으로서 겪는 여타의 불편과 차별의 시선은 작가라는 이중적 삶을 택한 사람에게도 다르지 않다. 작가라는 불안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택한 현실에서의 노동마저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고통의 가중이 있다는 점이 보다 쓸쓸하다면 쓸쓸한 일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결혼을 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창작이라는 행위의 비생산성이 나 자신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확산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 남성 평론가가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문학계에 여성작가가 많은 것은 상대적으로 생계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팔리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부모 또는 남편이 있기에.”
이 문장은 일차적으로 나를 비롯한 결혼한 여성작가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남편에게 생계를 의탁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해도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글쓰기가 아닌 가사노동이기 때문이다. 비혼 여성작가가 생계에 대한 위협에 시달릴 때, 기혼 여성작가는 글쓰기 자체를 위협받는다. 팔려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문장이 글을 쓰는 작가적 태도에 대한 폄하로 느껴지는 것도 반발의 한 부분이었다.
이런 여성작가들의 반발에 대해 다른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문장은 생계를 혼자 해결하기 힘든 사회경제적 약자인 여성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글일 뿐, 이 문장을 여성작가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건 지나친 과대해석이자 오해라는 주장이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비정규직 등 지극히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생계를 의탁해야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이지 작가적 태도 같은 부차적 논란은 논점을 흐릴 뿐이라는 것이 다른 한쪽의 주장이었다. 맞는 말이다. 글을 쓰는 일이, 창작을 하는 일이, 예술을 성취하는 일이 먹고 사는 것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아이를 기르는 여성작가들에게는 먹고사는 일에 한 가지가 더 붙는다. 아이를 잘 키우는 일. 슈퍼맘 콤플렉스는 여성들의 자발적인 모성 본능이거나 스스로 자처한 고민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 가정 내에서 가사와 육아의 분담에 대한 사회적 분석을 보면 사회가 여성들에게 강제한 콤플렉스이다.
이 글을 쓰면서 몇 번이나 신사임당에 대해 읽었다.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신사임당은 조선 시대의 뛰어난 예술가였다. 그러나 당대의 평론가들도 후대의 평론가들도 그이의 예술성보다도 율곡의 어머니로서 그이의 존재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다. 나는 가끔 궁금하다. 율곡의 그림자를 지우고 신사임당의 예술을 평가한다면 그이는 여전히 뛰어난 예술가일까.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 궁금한 점이 있다. 신사임당이 친정에서 살지 않았다면 그이는 과연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쓸 수 있었을까. 제아무리 양반가의 규수였다고 해도 말이다.

앞서 언급한 SNS상의 논쟁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논쟁의 유효성 때문이 아니라 논쟁에 참여한 이들이 어느 순간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으로 갈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쪽도 저쪽도 모두 약자였다. 그것을 양쪽 모두 깨닫는 순간 논쟁이 소멸했다. 물론 상처는 남았다. 그런데 이건 좀 이상한 종류의 상처였다. 아주 많이 마음이 아팠는데, 그건 상대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내가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입장과 처지, 그의 발언 속에 담긴 맥락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되었다. 설득 이전에 형성된 공감이 있으니 더 이상 논쟁을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사회 구조 속에서는 ‘여성’이라는 이름의 동일한 약자였던 것이다. 약자로서의 연민과 이해가 전제되어 있으니 주장의 이견에 대해 팽팽하게 맞서기 힘들었다. 인간적이지만 생산적이지는 않은 태도였다. 상처가 있더라도 끝내 넘어가서 발전적인 담론을 도출해내는 것, 그것이 논의자로서 올바른 태도겠지만, 나는 나의, 누군가의 상처를 딛고 논쟁을 이어나갈 용기는 없었다. 그것이 나의 한계라면 한계였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받은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 후회이거나 혹은 아쉬움일 것이다.

이제 누군가가 다시 한국에서 여성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묻는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여전히 내게 그 질문은 "아이는 어쩌고?"하는 질문으로 들린다. 결국 그 질문은 내게 여성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벗어나 작가로서의 삶으로 진입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논쟁은 사라졌지만, 현실은 남아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답을 모른다. 그러나 모르면 모른 채로, 끝내 합의하거나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조금씩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 한지혜 사진
  • 소설가 한지혜 작품집으로 『안녕, 레나』(새움),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실천문학)가 있으며
    경향신문 등 다수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내일을 여는 작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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