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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1

20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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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
코로나19 임팩트

비욘드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꿈꾸며

코로나19는 문화예술계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코로나19 이전엔 당연하던 일상이 당연하지 않게 변했기 때문이다. 공연장·전시장 등의 문화공간이 문을 닫기도 했고, 모바일을 통해 생중계공연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어려운 상황에서 예술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응원을 전한 예술인도 있다. 예술인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코로나19라는 험난한 항해를 하는 중이다. 그 항해 끝에 찾을 각자만의 섬을 위해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보자.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더 좋은 방법이 계속해서 생겨나길 바랍니다."
김지연 핸드스피크 소속 아티스트

작년 11월, 수어(手語)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이 쇼케이스를 선보였다. 놀라운 아이디어와 농인배우와 청인배우의 콜라보로 극찬받았고, 핸드스피크는 본격적인 공연을 준비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올해 예정됐던 첫 공연이 취소됐다. 이는 팀원들에게 아쉬움이고 부담이었지만, 그만큼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바로 세종문화회관이 세 달여간 진행하는 네이버TV 공연 생중계 〈힘콘〉의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갈등과 경계, 이해의 부재,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인간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내용의 수어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은 농인배우 7명과 청인배우 5명이 함께한다. 그중 한 명인 김지연 아티스트는 스트리밍방송의 장점을 먼저 언급했다. “공연장에서는 마지막 줄의 관객도 수어를 볼 수 있도록 관객석을 제한하는 반면 스트리밍방송은 많은 분이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현장감이 중요한 수어연극에서 관객과 직접 교류할 수 없는 점에 아쉬움을 덧붙였다. “수어연극은 농인과 청인이 동시에 대사를 합니다. 이를 촬영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관객들이 놓치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거고요. 대체를 위한 변화일 뿐, 더 나은 방법을 위한 고민은 계속해서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 6월 3일은 청각장애인의 날이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로 김지연 아티스트에게 4월은 가장 바쁜 달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된 올해는 다음 공연의 연습과 생계가 막막하다. “저뿐만 아니라 주위 예술인들 모두 생계를 유지하던 공연, 연습, 워크샵 등이 취소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김지연 아티스트는 앞으로의 돌파구를 찾을 예정이다. 새로운 형식의 온라인 콘텐츠로 예술을 전하고, 수어뮤지컬 뮤직비디오도 찍을 계획이라고. “첫 공연이 무관중, 라이브방송이라 어색하고 예측하기 어려웠지만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배우들이 말하고자 하는 수어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된 것 같고요.” 첫 생중계를 무사히 마친 김지연 아티스트는 코로나19로 예술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와 사회가 침체된 지금에 많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하루빨리 회복되어 많은 관객이 수어연극만의 현장감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며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현장 친화적 시스템 필요합니다."
정유란 문화아이콘 대표

코로나19가 장기화되자 공연 중단 여파로 문을 닫는 공연장이 늘고 있다. 2003년, 대학로에 개관한 이후 뮤지컬 〈구름빵〉과 〈사랑은 비를 타고〉, 연극 〈도둑맞은 책〉 등을 공연하며 사랑받아 온 예술극장 ‘나무와물’도 그중 하나다. 문화아이콘 정유란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2월부터 멈춘 공연장에 수입이 1원도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매달 내야 하는 월세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폐관의 이유를 설명했다. 4월 20일, 해당 글이 업로드된 이후 만난 정유란 대표는 “많은 분이 공감해주시고 함께 슬퍼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제일 먼저 전했다.

코로나19로 공연은 물론 예술인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르바이트도 멈춘 상황이다. 하반기로 미뤄진 공연도 불안정하다. 공연이 중단된 이후 정유란 대표는 출연진과 스태프들에게 재난지원금 수급을 위한 증빙자료를 발급하느라 바쁜 날을 보냈다고. 그전에도 대부분의 예술인이 생계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활동을 이어갔지만, 코로나19가 불을 지폈다. “고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하며 생활하긴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요. 그럼에도 이를 통해 근본적으로 높은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작업을 지속해왔습니다. 그런데 문화예술이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와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음 마주할 때, 예술인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은 그저 삶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해온 문화예술의 숨이 끊어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2000년 공연기획사 문화아이콘을 설립하고 20년 동안 대학로를 지킨 정유란 대표는 문화예술계의 재난 상황을 통제하는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국민의 보건을 책임지는 질병관리본부처럼 분야별, 단계별 실태 파악을 통해 인공호흡이 필요한 영역들에 빠르게 산소를 공급할 수 있는 매뉴얼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재해에 대비해 예술인과 예술단체에 특화된 보험의 절실함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현재 일반적으로 가입하는 공연자보험은 필수 의무가 아닐뿐더러 한도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아이콘 대표로서 예술단체에 대한 구체적인 구제책 마련에도 목소리를 냈다. “예술단체는 고용이 발생하고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라 불안정한 제작 환경에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지원책이 마련된다면 외부 요인으로 받은 타격의 피해를 줄이는 방편의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정든 극장을 정리하느라 바쁜 열흘을 보낸 정유란 대표는 현재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현재의 위기를 버티고 극복하고 있을 뿐. 그럼에도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다. “지금과 같은 어려움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멈추지 않을 거예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예술입니다."
블랑누아 앙상블, 김찬년 영화감독

골목을 누비며 흰 연기를 퍼트리던 방역차에 추억이 떠오르는 이가 많을 것이다. 피아니스트 그룹 블랑누아와 김찬년 감독도 그렇다. 하얀 연기와 매콤한 냄새를 장난스레 쫓던 아이들이 어느덧 성인이 되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대구가 고향인 이들은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당시 걱정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러던 중 전국의 의료진이 대구로 모이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예술인으로서 그들의 역할을 찾다 보니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해당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찬년 감독은 “안방에서는 그저 작은 선율이더라도 창밖을 통해 보이는 피아노 한 대의 모습이 시네마틱한 순간이길 바랐다”며 처음을 회상했다. 이들은 공연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소리를 증폭시킬 장치는 일제히 배제하며 최대한 정중하게 청중들에게 다가갔다.

해당 프로젝트는 4월 2일, 3일, 10일, 세 차례에 걸쳐 총 8시간의 공연으로 진행됐다. 첫 공연 당시 블랑누아 앙상블은 걱정이 앞섰다고. “소리가 들리기는 할지, 사람들이 들어줄지, 소음으로 받아들이면 어떡하지와 같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그러나 걱정도 잠시 창문 곳곳에 고개를 내밀어 음악을 감상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경험해보지 못한 트럭이라는 새로운 무대의 막연한 불안감이 기쁨과 보람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마치 거대한 홀에서 느낄법한 박수가 높은 하늘에서부터 울려 퍼졌어요. 고맙다고 외쳐주신 분, 직접 만든 간식을 챙겨주신 분, 발걸음을 멈추고 계속 칭찬하시던 분 모두 감사할 따름입니다. 힘을 드리고 위로를 전하고자 시작했던 공연에서 저희가 더 큰 위로를 받았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김찬년 감독의 영화적 상상과 블랑누아의 피아노 연주가 함께했다. 예술이 이들을 이어줬듯 이 프로젝트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싶었다고. “예술과 그 요소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결국 그런 사고와 경험을 나누는 과정에서 사람이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피아노 연주로 아파트라는 각자의 공간에서 창문을 열게 됐으니까요. 위, 아래, 건너편 주민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격려하며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연대감을 얻었습니다.”

대학 동기였던 박주랑, 서승아, 송정화, 최영은은 블랑누아로 활동하며 음악교육과 학원 운영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춘 상태. 예정된 공연도 무기한 연기되며 그들 주위엔 생활고의 문제 외에도 당장의 목표를 잃은 상실감에 빠진 친구들도 있다. 김찬년 감독도 학생들의 교내 및 각종 영화제가 모두 연기되면서 열심히 만든 영화를 선보일 기회를 잃은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지금처럼 전례 없는 전 지구적 위기상황에서 예술인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이 인간사에 필수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대가 오는 상황 속, 정서적·문화적인 부분에서 예술인의 역할과 그것을 실현할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블랑누아와 김찬년 영화감독은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연주회를 구상 중이다.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자동차극장, 드라이브 스루 같은 공연을 생각 중입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가 끝이 나는 게 제일 중요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