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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3

201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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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기획
나는 여성예술인입니다

여성+엄마+배우=나

글 유정민 배우·극작가

얼마 전, 남편이 페이스북에 동영상을 하나 공유했다. 작년 ‘캔터빌의 유령’ 공연을 준비하던 때의 연습 동영상이었다. 그 속의 나는 2살 난 셋째를 업고 안무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밑에 어느 선배의 댓글이 달렸다. ‘10년 동안 아이 키우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중략) 느닷없이 뚝뚝 눈물이….’

예술하는 여성으로서의 딜레마

아이를 낳기 전, 아니 결혼하기 전부터 선배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얘기가 있다. “예술하는 사람들끼리 결혼하면 여자가 그만두게 된다”는 것. 정설에 가까운, 무슨 과학적 진실처럼 말했다. 이런 이유로 자기네 인생에 결혼은 없다고 덧붙였다. 내 첫 임신 소식이 알려지자 전화를 했던 선배 하나는 “미쳤구나! 경력 잘 쌓아가다가 웬 임신이야! 배우로는 끝난 거야”라며 안타까움 섞인 욕을 해 주기도 했다.

큰애를 낳고 6개월간은 육아만 했다. 그동안 나는 우울증에 빠졌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안고 나는 불행했다. 내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다시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려웠다. 정말 이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면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 날,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물었다. “어린이집 가는 거 어때? 좋아?” 아이가 젖꼭지에서 입을 딱 떼면서 “좋아”라고 말했다. 눈이 화등잔만 해진 나를 잠시 쳐다보던 아이는 쿨하게 다시 젖을 빨았다. 거짓말이라고 해도 좋다.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일터로 나가고 싶은 엄마가 죄책감을 덜고 싶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용기백배해 어린이집을 찾아 나섰다.

연극인복지재단에서 위탁 운영했던 ‘대학로 어린이집’. 밤 11시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어서 대학로에서 공연 끝나고 헐레벌떡 달려가면 아이를 픽업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연극인만을 위한 시설은 아니었다. 공연도 늘 대학로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대학로 근처에 살지 않는 한 이용하기 어려웠고, 그나마도 주말엔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혜화로터리 쪽에 연극인 자녀들을 위한 ‘반디돌봄센터’가 생겼다. 선배 연극인 부모들이 애써서 만들어진 결과였다. 주말에 아이를 맡기러 친척집을 전전하지 않아도 되었다지만, 그나마도 이사, 큰애 유치원 입학, 둘째 임신, 서계동 연습, 남산 공연 등으로 생활반경이 대학로를 벗어나면서부터는 이용이 어려워졌다.

배우, 그리고 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

큰애를 만 6개월에 어린이집에 보내고는 자신감이 생겼다. 둘째는 5개월, 셋째는 3개월에 어린이집으로 등원했다. 물론, 아이들이 뱃속에 있을 때도 공연을 했다. 무대에 설 수 없을 만큼 배가 불렀을 때는 글을 썼고, 노래를 녹음했고, 복귀해서 할 공연의 회의를 했다. 아이 낳고 3개월 만에 무대에 복귀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일에 미친 거 같다고 했다. 애보다 연기가 좋으냐고도 했고, 독하다고, 억척스럽다고, 대단하다고도 했다. 이 말들은 다 틀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일에 미친 것도 아니고, 애보다 연기가 좋은 것도 아니며, 독하거나 억척스럽거나 대단한 사람도 아니다.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예술을 하기 위해 결혼이나 아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뿐이다. 내 딸들이 자신의 꿈과 가정을 맞바꾸기를 종용당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랐을 뿐이고, 내 후배들이 아이를 낳고 일터로 갈 때 내가 겪은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아가 전적으로 여성만의 책임은 아니며 내가 10살 때부터 꿈꿔 온 대학까지 가서 공부해 숱한 오디션을 거치고, 무대에서 땀 흘려 노력한 내 시간을 멈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내게 있어 배우로서의 삶은 정체성이다. 엄마가 된다고 정체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예술하는 여성배우엄마로서의 나

육아와 공연, 연습을 하면서 제일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동료들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난 늦은 밤에 우리 집에 와서 회의를 해주고, 공연장에 백일 된 애를 안고 가면 돌봐주고, 아이와 함께 투어 공연을 다녀주며 품앗이 육아를 해 준 동료들 덕에 나는 아직도 배우로 살고 있다. 제도가 더 나아지면 국공립극단에 직장어린이집이 생기거나, 아이돌봄 선생님을 파견해 주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고용조차 불안정한 직업인 배우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다.

나는 요즘 고전동화를 재창작한 어린이 낭독 뮤지컬 ‘삼양동화’를 공연하고 있다. 잘못된 젠더의식으로 가득한 고전동화를 현대적인 관점에 맞게 들려주다 보면 부모 관객들이 더 공감하는 객석 풍경을 목격한다. ‘오늘 하루’라는 음악극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셋째가 너무 어릴 때 만들었던 공연이라 맡길 데가 마땅치 않아 같이 무대에 섰던 것인데, 덕분에 아이들은 엄마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재인별곡’이라는 공연에서는 경기도 연천지역의 설화를 미투운동의 관점으로 풀어냈고, 내년 2월에 공연할 뮤지컬 ‘스페셜 딜리버리’에서는 여성과 임신, 가정에 대한 시각을 담아 관객과 만나려고 궁리 중이다.

이 작품들 모두에 내가 있다. 여성이며 엄마이며 배우인, 나. 그 어느 것도 내가 아닌 것은 없으니, 그 어떤 것을 빼도 나는 완성되지 않으니, 내가 만들 수 있는 무대를 만들 수밖에. 혹자는 ‘안이해진 것 아니냐’고도 묻는다. 규모가 작은 어린이 대상의 찾아가는 공연들을 주로 하고 있으니 그렇게도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가정도 일도 아이도 정체성도 포기할 수 없는 배우의 선택은 이러하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하고, 설 무대가 있으면 서고, 설 무대가 없으면 판을 깔고 앉아서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위대한 예술이 아니면 어떠랴. 내 앞에 관객이 있고 그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는 내가 만들 수 있는 무대를 만들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