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 이루어지는 시공간
2019. 4“주로 언제, 어디에서 작업하세요?”라는 질문에 정세랑 소설가는 책상 앞에서 글을 쓰는 정기적인 작업 외에 짬을 내서 길에서라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글을 쓴다고 답했다. 예술인의 투잡, 쓰리잡은 예전부터 일반적인 일이었지만, 그런 예술인들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졌다는 점이 크게 달라진 점이다. 폰 덕분에 작업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게 된 것 같지만, 반대로 폰(과 인터넷) 때문에 작업을 위해 기존과는 다른 시공간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아직은 지구를 떠나 작업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창작 시간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 9시에서 10시 정도까지 쉬지 않고 작품을 쓴다. 오후에는 조깅이나 수영을 한 다음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밤 9시에서 10 사이에 잠자리에 든다. 소설이 완성될 때까지 그는 매일, 이 일정을 반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오전 8시에 일어나 식사를 한 후 오전 9시에 서재로 들어가 문을 닫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낮 12시까지 어느 누구의 방해 없이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전화를 받지 않고 가족들이 서재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런 생활을 매일 이어갔는데 일요일이나 휴가에도 예외가 없었다.
시각예술가 리즈의 경우는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는 늦은 오후가 되기 전까지 작업을 시작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부터 작업을 시작하는데,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고 전화벨도 울리지 않는 시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밤을 기다리며 눈앞의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그는 육아 중인 엄마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 시간은 보통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다.
규칙적으로 작업 시간을 뺄 수 있다면 그나마 상황은 나은 편이다. 시를 쓰고 설치작업을 주로 하는 전수오 작가는 백일 넘긴 아이를 키우면서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일주일에 최소 3일, 하루 중 4시간 작업 시간을 확보한다는, 앞의 경우와는 비교적 유연한 규칙을 세웠다. 남편과 공동육아를 하고 있으므로 그는 일주일에 3번 정도, 하루 4시간 카페와 같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홀로 시를 쓰거나 아이디어를 정리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여성 예술인에게 작업 시간의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는 게 결정적이라고 전 작가는 귀띔한다.
정세랑 작가처럼 이동 중 틈날 때마다 작업하는 일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런 변화는 창작하는 공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영감을 받고 발효하고 구상하는 것까지 창작 과정으로 포함한다면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도 창작에 필요한 메모를 스마트폰으로 어느 때고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작업에 필요한 사진과 이미지 스케치도 스마트폰 하나면 오케이다.
김연수 소설가에게 작업실은 혼자 있는 공간에 가깝다. 소설 집필은 진행 과정에 따라 요구되는 시간이 다른데, 일단 소설이 시작되면 그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작업실에서 24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책도 안 읽고 음악도 듣지 않고 소설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이처럼 작업실에 출퇴근하면서 직장인의 감각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출근과 퇴근이 창작을 준비하는 어떤 의식이 되는 거다. 한편, 미술 작가들을 위한 국내외 창작 스튜디오가 늘면서 작업실의 종류와 쓰임도 다양해졌다. 스튜디오 작업실에 입주한 작가들끼리 공동 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카페는 예전부터 예술 문화 활동의 근거지로, 주요 예술 도시의 카페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모여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첸트럴 카페 입구에는 빈 모더니즘을 이끈 시인 페터 알테베르크(Peter Altenberg, 1859~1919)의 밀랍인형이 누구를 기다리는 듯 의자에 앉아 있다. 그는 카페 한쪽에 앉아 산문과 수필을 쓰면서 하루를 보냈다. 이렇듯 작가들의 유구한 작업 공간이었던 카페는 요즘도 여전히 작업하기 편안한 곳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는 아무래도 오래 앉아 있기가 어려워서 대부분 예술인들은 노트북이나 스마트패드 등 작업 도구를 들고 프랜차이즈 카페로 간다는 점이다.
첸트럴 카페, 페터 알테베르크와 그의 밀랍인형
아이를 재우고 집안일을 마무리한 후 식탁에 앉는다. 그러고 나면 식탁은 작은 작업실이 된다. 작업실은 고사하고, 자신을 위한 책상 하나가 없는 사람의 작업 공간이다. 키친테이블 노블은 하나의 장르가 될 정도로 알려져서 일단 키친테이블을 한 공간으로 분류했지만 누군가에게 그런 공간은 화장대일 때도 있다. 아이가 젖먹이일 때는 아이가 잠든 곳 곁에 노트나 종이를 놓을 수 있는 평평한 면이 있다면 거기가 키친테이블이 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의 현실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지하철과 버스, 기차 등 교통수단은 카페만큼이나 고전적인 작업 공간이었다. 여기에 장거리 비행 중 비행기 안에서 작품을 구상하거나 글의 진도를 빼는 예술인들의 등장으로 ‘하늘 위’가 새로운 작업 공간으로 부상했다. 그들이 하늘 위, 비행기 안을 작업 공간으로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 연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곳을 ‘나르는 글쓰기 감옥’이라고도 했는데, 1만 피트 하늘을 시속 800km로 나는 비행기 안은 어쨌거나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특히 장거리 비행이라면 탈출할 수 없는, 지겹도록 생각하고 쓸 수 있는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쓴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비행기 안에서 원고를 퇴고했다고 전해진다. 노벨문학상을 탄 이후라면 쾌적한 비즈니스석에서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