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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9 2019. 2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사색 관계적 상상력을 넓힌 예술인의 결혼을 중심으로

진화하는 결혼

2019. 2

인류는 종족을 보존하고 부와 권력,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결혼 제도를 만들고 오래 유지해왔다. 최초의 결혼은 자기 집단의 경계를 넘어서서 협력과 유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사람과 자원을 순환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했다고 알려진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결혼은 경제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와 기능을 지닌 제도로 자리 잡았고, 그렇기 때문에 결혼에 정작 결혼 당사자 두 사람의 선택은 의미가 없었다. 결혼 대상이나 이후 부모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도 아예 없었다. 그러다가 사랑을 연결한 낭만적 가치관의 결혼이 보편화된 건 18세기 중반 이후부터다.

마찬가지로 흔히 전통적 결혼 형태로 이해되는, 이성애자 성인 두 사람이 자발적 의사를 통해 일정한 의례 이후 법적 부부가 되어 한 사람은 생계를, 다른 한 사람은 가정 내에서 경제적 생산 외 노동을 맡는 형태의 결혼도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그와 같은 결혼은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 즉, 자본주의가 등장한 시기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무척 새로운 것이었다.

전문가들이 결혼 혁명이라고 명명하는 이 변화는 1950년대에 절정을 이룬다. 자본주의 도래 이후 최초로 서유럽과 북아메리카 인구의 95%가 결혼하며 광범위한 다수가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1960년대 피임약 개발, 1970년대 초까지의 반전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여성의 사회 진출 등 다각도로 일어난 변화가 결혼을 비롯한 개인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족이 그렇듯 결혼도 시대와 사회에 따라 그 의미와 규범이 달라졌고 지금도 변화를 겪고 있다. 역사가 300년이 채 되지 않은 개인화된 결혼은 최근 혼인율 감소와 이혼율 증가로 또 한 번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앞으로 인생에서 단 한 번만 결혼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는 결혼과 가족. 결혼과 가족의 의미는 향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틀에 박힌 국가 제도와 종교의 영향으로서의 결혼에서 벗어나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시도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예술인들의 결혼과 사생활은 단순한 스캔들이 아닌 결혼의 본질과 의미를 반문하기에 적절한 예시가 되었다.

전통적 결혼으로 행복할 수 없다면

그들의 선택과 시도가 늘 해피엔딩은 아니었는데, 그건 다른 사람들이 겪는 일반적인 결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예술인들의 결혼이 더 주목받으며 언론과 대중을 통해 스캔들이 되면서 그들의 불행은 유난히 과장되기 쉬웠다. 자기 삶에 안심하기 위해 타인의 불행을 억측하거나 과장하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흔하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1929년 계약 결혼을 한 20세기 최고의 지성이자 작가인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했던 보부아르와 “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극단적 자유가 가능하다”라고 한 사르트르의 만남은 여러모로 특별했다. 그들이 상호 합의한 결혼 계약의 주요 내용은 1) 서로 사랑하는 동시에 우연히 찾아온 서로의 다른 사랑도 인정한다. 2)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3)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다 등이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고, 또 여러 이유로 관계에 잡음이 없진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이 계약은 사르트르가 숨질 때까지 50년 동안 갱신, 유지되었다. 1920년대 프랑스 사회에서 이 계약 결혼은 쉽게 이해받지 못했다. 한국 정서 안에서는 지금도 어려울 것이다.

  • 50년의 계약 결혼을 유지한 시몬 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50년의 계약 결혼을 유지한 시몬 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 루 살로메, 파울 레, 그리고 니체. 세 사람의 동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루 살로메, 파울 레, 그리고 니체. 세 사람의 동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제도와 통념을 넘어서

둘로 충분치 않다면 셋은 어떤가. 루 살로메(Lou Andreas-Salome, 1861~1937)와 파울 레(Paul Ree, 1849~1901),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특별한 동거는 루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독일 페미니즘의 대모인 말비다 폰 마이젠부르크(Malwida von Meysenburg, 1816~1903)의 소개로 만나게 된 파울 레가 루에게 다시 니체를 소개하면서 세 사람의 운명이 묶인다. 파울 레와 니체는 루를 열렬히 사랑했고, 루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랑, 정신적인 합일을 이루는 관계를 두 사람에게 요구했다. 둘은 이를 (아마도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1882년의 일이었다.

세 사람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유명한 사진 촬영이 바로 루의 요구에 두 사람이 응하면서 이루어진 셋의 동거에 대한 상징적 의식이었던 셈이다. 사진 속 수레 위에 앉아 있는 루의 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고, 두 남자는 수레를 끄는 듯 앞쪽에 서 있는 모습이 셋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니체가 루에게 두 번 청혼하면서 셋의 관계는 변질되고 말지만 세 사람의 관계는 헤어진 후에도 서로에게 오래 영향을 미쳤다. 니체는 루 살로메가 없었다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쓸 수 없었을 거라고 언급한 바 있다.

루 살로메는 얼마 후 안드레아스라는 남성과 “일체의 구속을 거부하며 다른 남자와의 자유연애를 허락한다”라는 조건을 걸고 결혼했고, 36세에는 당시 무명 시인이었던 릴케를 만났다. 1911년 50대에 접어든 루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만남은 정신적 교제와 동반자적 관계로 평생에 걸쳐 이어졌다. 루와 그들의 관계는 서로에게 정신적 도약을 위한 창조적 에너지를 제공하며 우리가 반색할 저작과 연구 성과를 무수히 남겼다.

형식뿐 아니라 횟수의 변화에도 주목

당시 사회 인식과 전통 결혼의 틀을 깨며 논란이 되었던 앞선 관계 형식은 현재에 와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가정 내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연결되었다. 자유로운 관계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여성에게만 보수적으로 적용되는 관계의 잣대와 성(性), 가부장제, 낙태권 등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가족을 이루는 결합과 부부의 조건에서 법적 결혼만이 정답이던 시대는 과거가 되고 있다. 결혼 후 가족 안에서 여성의 지위나 역할도 달라지고 있으며 생활방식의 다양화, 젊은 세대의 개인화 덕분에 동거에 대한 태도 역시 변화하고 있다. 이 모든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미래학자들은 지금껏 맺어온 인류의 관계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다양한 관계를 미래의 인류는 살아가게 될 거라고 예견한다. 그 다양성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제도와 통념의 억압으로 감추고 있다가 어떤 변화 속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가령, 최근 스웨덴에서는 해마다 동거 커플이 낳는 아이 수가 법적 부부가 낳는 아이 수를 웃돈다. 조사에 의하면, 현 한국의 20~30대의 60%가 동거에 찬성한다고 하니 이 사회 역시 결혼과 같은 대표적인 관계들이 어떤 변화 속에 있는 건 분명하다.

결혼 형식뿐 아니라 결혼 횟수에도 변화는 필연적이다. 영국의 1850년생 여성이 남편 사망 시까지 유지하는 평균 결혼 생활은 29년이던 것이 1950년생 여성일 경우에는 무려 45년으로 늘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이제는 100세 시대를 넘어 120~130세를 산다고 할 때 평생 한 사람과 살아가야 한다는 약속이 전제되는 전통적 개념의 결혼은 맞지 않는다.

다양한 관계가 공존하고 보호받는 사회

그렇다고 전통적 개념의 결혼이 완전히 사라질 것 같진 않다는 게 또한 전문가 다수의 의견이다. 사회마다 결혼의 의미가 다르고 그 필요성과 기능도 다르지만 결혼은 앞으로도 중요한 제도로 남을 것이라고. 다만 그 결혼과는 다른 형식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관계들의 공존이 중요하며, 다른 선택의 여지를 갖게 된다는 게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정상적이고 유일한 형태라고 여겨온, 이성애 규범성과 성 역할에 기초한 가족 구성 형태가 여러 가지 결혼 방식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야말로 결혼의 본질이 무엇인가 다시 고민해보기 적절하다. 형식에만 치중하는 이들은 전통 개념의 결혼만을 고집하겠지만 결혼의 목적이자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어떤 형태의 동반자든 궁극적으로 둘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상호 합의해 삶의 의미를 가꾸는 방향으로 관계한다면 흔히 우려하듯 결혼은 파괴되고 있는 게 아니라 진화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동행하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되찾기 위해 무엇이 달라져야 할지 이야기하고 공유하면서, 그렇게 서서히 일어나는 인식의 변화가 제도의 보완과 「생활 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같은 법적 보호로 이어진다면 저출산과 독거노인의 고독사와 같은 사회적 문제부터 예술인의 관계적 상상력의 확장까지 출구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튼, 지금 우리에게는 더 많은 관계가 필요하다.

*「생활 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
혈연이나 혼인 외의 사유로 발생하는 생활 동반자 관계의 성립과 효력을 규정하는 법률. 의료보험, 주택자금 등 사회보장과 세제 혜택, 보호자의 권리 등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