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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복지뉴스

칼럼 시인 김안

응시의 예술

2017. 9
응시의 예술

4살 난 딸아이를 안고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길이었습니다. 둘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버스정류장으로 가던 길에, 갑자기 딸이 제게 말했습니다.
“아빠 노래는 슬펐어. 이제는 슬픈 노래 부르지 마.”
마치 제게 훈계를 하는 듯한 딸의 이야기를 듣고 빙긋 웃으며,
“응, 이제 아빠는 즐거운 노래만 부를게.”
라고 말해주었죠.

딸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한 건 두어 달 전 부모님과 함께한 가족 여행 때 일 때문입니다. 여행지에 도착해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 갔었죠. 노래방에서 주로 마이크를 잡고 있었던 건 아버지와 딸아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젊으실 적 즐겨 부르시던 〈신라의 달밤〉 등 옛 노래를 부르셨고, 딸아이는 신나는 동요를 불렀죠. 식구들은 함께 손뼉을 치며 흥겨워했습니다. 딸아이가 아빠도 노래를 부르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한 곡 골라 불렀습니다. 이문세의 〈옛사랑〉이었죠. 노래를 부르며 얼핏 보니 딸아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표정이 점점 굳더니,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렸죠. 그리 잘 부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딸아이의 표정을 보고 중간에 노래를 끄고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빠 노래가 슬퍼.”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신나는 다른 노래를 이어 불러 봤지만 딸의 표정은 그대로이고, 더 이상 신나하지도 않더군요. 결국 30여 분 시간을 남겨두고 숙소로 올라왔죠. 그리고 이제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딸아이와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 이후로 종종 함께 노래를 부르다가도 저렇듯 제게 훈계를 하는 것이죠.

실은 지금 이 글을 쓰며 듣는 음악도 딸아이의 기준에선 슬픈 노래입니다. 곰곰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저 역시 유년 시절에는 신나는 노래들만 좋아했었죠. 종교에 깊숙하게 빠져 있던 사춘기의 한 시절에는 찬송가만 들었고, 그 이후 어느 순간부터는 헤비메탈만 들었고, 그리고 또 어느 순간부터였을까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저는 슬픈 노래만을 들어왔습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지만, 내가 즐겨 듣는 음악들 역시 삶의 경험들과 그 속에서 내게 남겨진 감정들의 결을 따라 결정되어온 셈이죠.

취향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글도, 내가 쓰는 글도, 내가 듣고 있는 음악처럼 바로 지금의 취향에 따라 변해가기 마련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늘 삶과 함께 어깨를 겯지르고 동행하는 것입니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대개의 훌륭한 예술 작품은 그것을 만들어낸 예술가의 삶이 작품의 내재적 특성과 투명하게 겹쳐지기 마련입니다. 작품의 밀도와 삶의 밀도가, 작품의 열도와 삶의 열도가 함께하는 것이죠. 때문에 삶이 변하게 되면, 작품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일상의 삶이 평온하게 고여 있는, 비교적 윤택한 일상을 영위하는 이들에게서 더 이상의 미적 변혁을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은 이 때문입니다. 일상의 불안 속에서 마음은 기울고, 그 기울기를 따라서 삶은 침몰하고, 그 침몰을 먹먹하게 투명하게 응시하는 힘이 환상의 공장을 만들어 미적 혁신을 가지고 오는 셈이죠.

이처럼 예술과 삶은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여야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은, 그 안의 위기와 불안마저 반복하기 마련이고, 우리는 반복되는 경험들 속에서 그 위기와 불안을 극복해내는 방어기제로 마음의 관습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관습 속에서 마음은 점차 없어지고, 마음이 없어지면서 내 안에서 기계적 반응이 시작됩니다. 즉, 일상이 강화됩니다. 감정이 없는 기계적인 상태, 일상으로의 안온한 침잠. 아마도 슬픈 노래만 들어온 저의 음악 취향 역시 그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이 소강되고 기계처럼 관습적으로 반복만을 거듭하는 상태에서 굳이 슬픈 노래만을 듣는다는 것은 이제 한낱 재로 남겨진 여분의 불씨를 어떻게든 일구려는 행위일 겁니다. 그마저도 없다면, 예술은 끝나니까요.

또한 육체는, “굶지 말 것, 목마르지도 말 것, 추위에 떨지 말 것을 외친다.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그렇게 될 확실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신과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에피쿠로스, 『쾌락의 철학』)”고 쉼 없이 말합니다. 예술과 육체가 충족된 상태, 즉 고통이 없는 상태는 얼마나 먼가요? 그것이 가능한 상태일까요? 물론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육체의 충족된 상태는 어마어마한 부를 지닌 상태가 아닌, 아주 적당한 정도의 것입니다. 도리어 그는 “한계를 모르는 부유함은 커다란 가난”이라고 말합니다. 정확하게 생존할 수 있을 만큼의 육체적 상태, 그러한 상태에서라야만 ‘신과 같은 행복’에 다다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과 같은 행복’과 ‘예술’은 얼마나 먼 거리인가요?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예술가가 이러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생존할 만큼’의 기준 또한 다를뿐더러 그러한 상태를 유지한다고 한들, 몸의 욕구는 언제나 들려오기 마련입니다. 내가 부유하든 가난하든 몸은 늘 욕구하고 마음을 추동합니다. 예술은 분명, 삶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삶을 지탱시키는 물질로서의 몸과는 또한 다른 방향으로 엮인 채로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육체의 방종을 예술적 표출로 바라보던 이들 또한 있어왔고, 육체를 깎아내는 고행을 예술의 현현으로 바라보는 이들 또한 있듯 말입니다.

가난이 끝나면, 즉 육체의 고통이 끝나면 청춘은 종언을 선언합니다. 마음의 불안과 열정이 식어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청춘이, 청춘의 고양된 상태가 끝나면 예술 또한 끝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불안의 상태를 불안스레 기억하고 유지하며 예술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프랜시스 베이컨은 『수상록』에서 “불안은 보통 쾌락을 대가로서 요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것이 무사(武士)들이 술과 여자에 쉽게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라고 첨언합니다. 베이컨의 말을 따라 변용하자면, 불안은 응시해야만 하는 것이되 결코 그 속으로 깊숙하게 침잠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불안에 빠져들 때, 쾌락으로의 도피가 이루어지고, 이때 예술가로서의 특유의 위악적인 포즈들이 나타납니다. 예술은 결코 삶의 방기, 혹 퇴폐적 삶의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이 느끼는 경제적 문제를 포함한 수많은 불안들, 그것은 그저 ‘불안’일 뿐이지 예술가로서의 명예훈장이 아닙니다.

에피쿠로스에게 삶의 목표는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에게 삶의 목표는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불안을 서로 견주며 그 어느 쪽에게도 잠식당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 나가면서, 이 언제 기울지 모를 균형을 응시하며 기록해나가 작품으로 만들어나가는 데 있습니다. 예술의 힘은 결국 끝끝내 응시하는 힘. 나로부터의, 타자로부터의 응시를 견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응시를 포기하지 않을 때, 예술은 나의 삶과 함께 몸을 바꾸며 타자의 삶을 호출해, 억압받아온 타자의 목소리로 그들의 슬픔을 형상화할 수 있을 겁니다.

딸아이가 커서 슬픈 노래를 듣기 시작할 무렵이면, 그 슬픔에 잠겨 있을 만큼 감정의 폭이 넓어질 무렵이면,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삶의 한 과정인지를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슬픔을 통해서 다른 이들의 슬픔을 껴안아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 김안 시인 2004년 『현대시』로 등단.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및 동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시집으로 『오빠생각』, 『미제레레』가 있다. 제5회 김구용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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