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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복지뉴스

기획 예술인 파견지원, 그리고 만남

예술인을 위한 추천도서:
‘이야기’ 생산자로서 파견예술인을 위하여

2017. 6
고영직 (문학평론가)

문화는 상품처럼 발명되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지금 어떠한가. 예술가든 아니든 우리는 자기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생존 자체에 대한 두려움에 내몰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한 사람의 예술가라면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만성적인 고질병이 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최근 갈수록 문화 양상이 스낵컬처(snack culture, 짧은 시간 동안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경향)의 속성을 띠는 것은 그런 이유와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저마다의 삶에서 회복력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야 우리의 문화 또한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 파블로 엘게라『사회참여예술이란 무엇인가』
    열린책들, 2013
    사진:표지 이미지
  • 정석『도시의 발견』
    메디치, 2016
    사진:표지 이미지

손택수 시인은 「앙큼한 꽃」(2006)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골목에 부쩍 / 싸움이 는 건 / 평상이 사라지고 난 뒤부터”라고. 시인이 말하는 평상(平床)이라는 은유는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것은 실재하는 평상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수평(水平)적 협력체계로서의 평상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으리라. 다시 말해 평상은 ‘누구나’의 공간으로서 공유지의 일종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데, 위 시에 묘사된 평상이라는 기호는 이제는 ‘누군가의’의 사유화된 공간이 되어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평상 몰아내고 주차금지 앙큼한 꽃을 피”운 “동백 화분”의 모습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터무니없지 않다.

시인은 우리네 삶에서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시적 환기를 하고자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쉽게 말해 평상에서 “숙제를 하던 아이들”이 사라지고, “부은 다리를 쉬어가곤 하던 보험 아줌마”도 보이지 않고, “국수내기 민화투를 치던 할미들”이 실종된 골목이라는 비유를 통해 나와 당신은 지금 안녕하신가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람을 품어주는 평상이 있는 골목은 우리 삶에, 우리 사회 어디에 지금 있는가 하는 점을 묻고 있는 셈이다. 제프 딕슨이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낮아졌다”라고 토로한 사회적 현상을 되묻는 시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시적(혹은 예술적) 수행(performance)의 힘이라고 감히 확언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예술인들의 ‘활동’을 기반으로 지원하는 정책사업인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의의 또한 갈수록 그 가치가 훼손되어가는 ‘평상’ 하나 놓는 일과 다를 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국의 기관·기업, 지역 현장에 참여한 예술인들이 저마다의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이야기가 있는 삶을 복원하는 과정은 평상을 놓는 일에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인이라면 사회참여예술(Socially Engaged Art)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는 파블로 엘게라의 『사회참여예술이란 무엇인가』(열린책들, 2013)를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참여란 동질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활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다”라고 참여의 개념을 정의하는데, 이점이 퍽 흥미롭다. 이러한 참여는 결국 ‘해방’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고, 그런 해방의 모습은 ‘서술자와 번역자의 공동체’라고 저자는 철학자 랑시에르의 개념을 들어 풀이한다.

『사회참여예술이란 무엇인가』와 더불어 건축가 정석의 『도시의 발견』(메디치, 2016)을 같이 읽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한 도시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서 저자는 당신은 ‘살기 좋은’ 도시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팔기 좋은’ 도시에 살고 있는가 묻는다. 국내외 도시혁신 실험을 소개하는 4장 이야기도 퍽 흥미롭지만, 그런 도시혁신 실험을 추동하는 주체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는 3장의 이야기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시장(市長)과 시장(市場) 가운데 무엇이 도시를 움직이는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그리고 자본과 권력을 넘어선 ‘시민(市民)’이 주인이 되는 도시인문학의 가능성을 되묻는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좋은 도시란 좋은 정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심하게 앓는 지역 주민들이 한목소리로 “동네가 뜨니 동네를 뜨래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현장 예술인들 또한 일상적으로 실감하는 문제여서 퍽 공감되리라 믿는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참여 예술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활동의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법하다.

  • 사진:표지 이미지
나카지마 요시미치『비사교적 사교성』
바다출판사, 2016
예술인들이 기관·기업, 지역에 파견된다는 것은 이야기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협력의 과정이 마냥 수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일본의 괴짜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가 쓴 『비사교적 사교성』(바다출판사, 2016)이라는 책을 참조할 만하다. 책의 제목인 비사교적 사교성이라는 말은 철학자 칸트가 제안한 개념으로 어느 정도 사교적이지만, 또 어느 정도는 비사교적인 성질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의존하지 않지만, 고립되지도 않게’라는 책의 부제가 비사교적 사교성이라는 개념을 잘 요약한다. 스스로 괴짜가 되어 칠십 평생을 살아온 저자의 독특한 삶의 철학을 요약한 개념이어서 더 흥미롭다. 책을 보며 시인 이문재가 역설하는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살고자 하는 자유인의 삶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항상 협력이 미덕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사진:표지 이미지
릴리쿰『손의 모험』
코난북스, 2016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은 여느 장르보다 미술 분야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대학 졸업 이후 삼십 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십수 년째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며, 먹고사는 수작(手作) 문화를 고민하는 세 명의 예술인들이 자신의 실패 경험을 적은 릴리쿰의 『손의 모험』(코난북스, 2016)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라틴어로 ‘나머지’를 뜻하는 릴리쿰(Reliquum)의 구성원 선윤아, 박지은, 정혜린은 주장한다. 수작문화는 반짝 유행하는 패션이 아니라, ‘감각의 균형’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과 닿아 있다고. 삶으로서의 제작문화를 고민하는 예술인이라면 이들의 좌충우돌 고민과 의미 있는 실패 이야기에 적극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예를 들어 “잠들어 있는 손의 감각을 깨워 만지고, 움직이고, 손으로 생각하면서 ‘만들기’ 시작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삶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다”라는 문장을 접하며, 적잖은 감동을 받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멀쩡한 아이폰을 해체한 후, 다시 조립하는 등의 다양한 ‘손의 모험’을 오늘도 하고 있는 이들의 행보가 계속 이어지기를 나는 성원할 것이다.
  • 찰스 부코스키『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민음사, 2016
    사진:표지 이미지
  • 한창훈『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한겨레출판, 2016
    사진:표지 이미지

퍼실리테이터를 비롯해 참여예술인들의 고민이 없을 수 없다. 파견지원 활동의 상투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있겠지만, 참여하는 기관·기업, 지역 특유의 경화(硬化)된 조직문화 앞에서 좌절하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파견’이라는 형식으로 인해 이른바 ‘갑질’ 논란을 겪게 될 수도 있고, 기관·기업 특유의 관료주의 때문에 마음고생 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矜持)를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문화는 하루아침에 개선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저절로 아름다워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 예술인이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고, 철학자 푸코가 말하는 ‘자기에의 배려’가 필요하다.

바로 이런 고민의 순간에는 미국 시인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민음사, 2016)과 소설가 한창훈의 우화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한겨레출판, 2016)를 읽으며 ‘근자감’을 갖고, 예술의 영원한 토픽인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라는 유토피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부코스키의 시집은 평소 시를 접하지 않는 예술인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시집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멋지게 들리는 건 / 내가 도박하듯 글을 쓰기 때문이다” 같은 구절에서 당당한 자부심(이라고 쓰고 ‘자뻑’이라고 읽는다)을 읽을 수 있으리라. 5편의 소설이 수록된 한창훈 소설에 묘사된 나라에는 오직 단 하나의 법조문 외에는 없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라는 조항이다. 수평(水平)적 삶이 존중되고, 그런 커뮤니티를 향한 우화소설이라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 특히 누가 시켜서 하는 피아노 교육을 거부하는 아이가 등장하는 「그 아이」라는 소설은 현장예술인이라면 누구나 공명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월든』1845

마지막으로 추천하고자 하는 책은 가난한 풍요의 삶을 예찬한 19세기 사상가로 잘 알려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1845)이다. 이 작품의 한 구절을 보자.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고,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인들의 활동이 나 자신에게, 동료 예술인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를 향해 고독과 우정과 사교(사회)를 위한 ‘의자’를 내어놓는 활동이 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골목에는 평상과 의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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