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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4 2017. 5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칼럼 미술가 이미래

스물아홉에 만난 에바

2017. 5
스물아홉에 만난 에바

올해로 꼭 서른 살이 되었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작업하는 사람으로 살면서 그동안 어떤 차원에서의 나는 전혀 나이를 먹지 않고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머니가 예순을 넘긴 지 한참 후에도 항상 그녀가 이제 막 50대 초중반 정도에 들어섰다고 착각을 했다. 또 막연하게 어른의 나이가 된다는 것은 묵직한 무게의 문을 밀어젖히고 다른 공간으로 들어서는 일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것이 거의 아무런 기척도 없이 어느새 바뀌어 있는 하늘색이라든가, 가습기에서 나오는 수증기에 천천히 젖는 이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 어렸을 때의 나에게 있어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마트 진열장에서 눈이 아프도록 환한 유제품 칸을 보는 일과도 비슷했던 것 같다.

20대가 끝나갈 즈음 사귄 동료 작가 에바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시를 좋아했고 애들 같은 그림을 그렸으며 로렌조라는 이름의 윤기 나고 미끈한 몸뚱이를 가진 검은색 개를 키웠다. 그녀는 별 조심하는 기색도 없이 첫 만남부터 친구가 필요하다는 절박함을 내비쳤다. 에바의 파리 작업실은 건물에서 해가 가장 들지 않는 곳에 있어서 커다랗고 시원한 크기가 되레 음산하고 축축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이 작업실이 지긋지긋하다고 했고, 햇빛을 받지 못하는 것이 너무 끔찍하다며 베를린이 그립다고 했다. 작업실 바닥은 ‘앵무새의 두통’, ‘셀카’와 같이 짧고 산발적인 텍스트 위로 물감을 튀긴 드로잉으로 가득했다. 펼쳐놓은 드로잉 사이를 로렌조가 마구 뛰어다녔다. 에바는 말주변이 좋았고, 단순하고 빠른 질문들을 순식간에 무겁거나 내밀한 것들로 바꿔치기하는 솜씨가 훌륭해서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어느새 당시 연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오랜 친구라 누구보다 좋지만, 그 사람의 늙은 몸을 보면 이따금 애정이 식어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문득 에바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고 그녀는 올해로 꼭 쉰 살이 되었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나이 드는 것과 폐경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했다.

처음에는 에바가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를 조금 더 알게 되면서 에바는 모든 것을 원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에바의 이야기가 되는 재료들은 마치 꿈처럼 그 위치나 무게가 뒤죽박죽이었다. 에바는 늘 자신은 비슷한 작업을 해왔던 것 같은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꼭 자신의 것처럼 보이는) 어떤 종류의 유아적 이미지를 지닌 작업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것을 보았을 때의 혼란스럽던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얘기를 할 땐 작업을 30년도 넘게 멈춘 적이 없어서 자신의 작업을 다 기억하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고도 덧붙였다. 애가 있으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가끔 했지만, 가끔 생각해보는 정도의 상태로만 지내다가 지금은 힘들게 되었다고도 말했다. 또 7년을 키운 로렌조가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그러고 보니 단짝친구가 최근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했는데, 자신이 굳이 임종을 지키지 못할 날짜를 골랐기 때문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고 했다. 에바의 이야기 속에서는 시작과 끝이 섞이고 서로 다른 사건들의 머리와 꼬리가 여기저기에서 만나기를 반복했다. 에바는, 예술가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신화가 물화 되었다는 듯이, 단지 작업을 계속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이 드는 일조차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날씨가 굉장히 좋았던 어느 날, 공원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로렌조를 산책시키던 에바와 마주쳤다. 에바는 내 얼굴을 보더니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 인생이 망할 것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지, 좋은 작업이 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좋은 삶이 살고 싶은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에바에게 두서없는 이야기를 쏟아내며 지금 하는 작업에 확신이 안 들고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 그녀의 얼굴은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에바는 이런저런 말들로 나를 격려하면서 중간중간 스스로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녀는 정말로 내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자기 일처럼 꿰뚫고 있었다. 에바가 힘을 내라고 하자, 실제로 힘이 났다. 그 대화가 있었던 밤, 방에 누웠을 때 이불을 덮고는 문득 생각했다. ‘나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이어서 나는 갑자기 ‘나에게 엄마가 생겼다’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왜였는지 하자마자 흠칫 부끄러운 감정에 사로잡혀 ‘방금 한 생각은 취소다’라고 머릿속에서 되뇌었다.

우리는 곧잘 친하게 지냈고 에바가 파리를 떠나기 전에는 함께 작은 전시를 열기도 했다. 함께 했던 전시에 에바는 ‘오래된 책략, 새로운 쾌감’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에바를 다시 만난 것은 두어 달이 지난 후 베를린에서였다. 에바는 자신이 좋아하는 갤러리들을 열심히 소개했고 작업실도 구경시켜주었다. 파리에서 보았던 작업은 색채가 다소 어두웠는데, 빼곡히 세워진 캔버스 작업들이 내뿜는 생기에 깜짝 놀랐다. 개중에는 오로지 젊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림들이 있었다.

나는 가끔 에바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 에바의 옆얼굴이나 잘 뻗은 다리, 엉덩이 등을 꼼꼼히 훔쳐보곤 했다. 때때로 나는 에바의 빗질하지 않은 회색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거나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에바는 엄격한 얼굴 윤곽에 매력적으로 대비되는 부드러운 눈매를 가졌고, 몸매는 꼿꼿하고 시원했기 때문에 젊었을 때의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왜 에바의 아름다움에 대해 과거시제를 써서 감탄하는 일에 그렇게 많은 지분을 나누어주는지가 자주 궁금했다. (에바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50대 여성으로서는 되레 잘생긴, 고령의 남자배우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사실 나는 ‘내가 커서 에바처럼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에바를 만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내 나이를 세어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바와 내가 같은 종류의 경탄으로 작업물을 바라볼 때, 같은 방식으로 남성 일반을 모욕하는 농담을 할 때, 같은 마음으로 각자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런 순간들은 내가 저 앞에 놓인 에바의 윤곽 안으로 시간을 따라 걸어 들어가 그녀와 포개지는 상상을 하게끔 만들었다. 일순 부드럽고 아름다운 이미지인 것 같기도 했지만, 거기에는 묘하게 나를 겁에 질리게 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 가령 나는 에바가 로렌조를 남편이나 아들 취급을 한다며 뒤에서 놀리곤 하던 다른 친구들에게 갑작스럽게 서럽고 공격적인 마음에 사로잡혔다. 혹은 ‘에바는 요리를 잘하니까 함께 먹을 가족이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고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에바를 마지막으로 본 지가 꼭 일 년이 지났다. 누구에게나 나이가 들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들이 있다. 창작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종종 그 감각을 사회 일반보다 더 뭉툭하고 느린 방식으로 경험하지 않나 짐작해본다. 나에게 있어 에바는 그 감각이 이미지로 구체화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 글은 이제 더 이상 어리지만은 않게 된 때에 계속해서 예술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 대한 소고이다. 하지만 글을 마치며 나는 다시 에바의 개별적인 초상 자체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곳에 늘어놓은 에바에 대한 모든 이미지 카드를 나 혼자 정렬하는 일에는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 에바라는 존재는 입체이고, 나의 이미지 패들은 세계로부터 빌려온 평면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를 가까이에서 바라본 경험이 가져다준 변화가 있다면, 에바를 만난 이후의 나는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마트 진열장의 유제품 칸 대신에 그녀를 떠올린다는 점이고, 이제는 그녀를 닮았거나 닮지 않은 더 많은 ‘에바들’이 궁금하다는 사실이다.

  • 허성은(성악가)
  • 이미래(미술가)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입체 매체를 위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개인전 ‘낭만쟁취(인사미술공간, 2014)’ 외 ‘네리리키르르 하라라(서울시립미술관, 2016)’, ‘복행술(케이크갤러리, 2016)’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