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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1 2017. 2 로고

예술인복지뉴스

인터뷰 레인보우 큐브 김성근 대표

예술·예술가에 대한 인식 변화
안정적인 작업실 지원으로 이어지길

2017. 2

레인보우 큐브는 망원동에 위치한 시각예술 기반의 공동작업실이다. 2010년 합정동의 2층 사무실을 공동작업실로 사용하면서 시작, 2011년 망원동으로 이전한 후 현재까지 이곳을 거쳐간 작가들은 약 61명. 6년간 이곳을 운영해 온 김성근 대표를 만나 예술인에게 있어 작업실의 의미와 공동작업실 운영 체계, 제반 여건의 한계 등을 들어봤다. 글 김지승 / 사진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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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부근에서 상수, 합정을 거쳐 망원동까지 확장된 ‘홍대권’은 특히 시각 예술인들에게 특별한 공간이다. 예술인들이 형성한 특유의 공간문화는 그들 작업의 결과이자 또 다른 작업이 가능해지는 여러 조건을 포함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심각하지만 여전히 이 주변으로 다양한 형태의 작업실이 다수 분포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공동작업실을 거점 삼아 웹상의 작업실 커뮤니티, 레인보유 큐브(www.rainbowcube.co.kr)와 합정동 레인보우 큐브 갤러리(www.rainbowcube-space.com)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김 대표는 6년간 이 공동작업실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라고 입을 열었다. 전반적으로 작업실 운영 상황이 불안하다는 의미였다.

처음 공동작업실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미술용품 사업을 하던 중 고객 한 분과의 만남이 인연이 되었다. 망원동에 있는 본인 소유 건물 2층이 비어 있으니 젊은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작업실로 만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제안을 먼저 해주셨다. 옥탑이 있는 60평 규모의 공간으로 10년 동안 비어있었던 걸 작업실로 바꿨다. 공사비용 5천만 원은 전액 건물주가 부담했다. 2011년 8월부터 3년 계약을 조건으로 임차하고, 1년씩 연장하면서 사용해왔다. 공사비용이 들지 않은 것, 작업실의 위치나 평수, 현재까지 월세 인상이 없다는 것 등 모두 예외적이고 상당히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작업실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간단하다. 내가 작업실을 관리 및 운영하는 역할을 하고, 예술가 13명이 작업실 공간을 나눠서 쓰고 있다. 두 명이 함께 쓰는 좀 넓은 공간과 혼자 쓰는 공간이 있는데 대략 1인당 3~4평을 쓰게 된다. 공간 할당에 따라 사용료는 차등이 있다. 한 달에 공과금 포함 20~25만 원 정도다. 그 수익으로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작업실에 있는 작가들이 큰 재산이다. 갤러리와 작업실, 커뮤니티 사이트를 혼자 운영해오면서 예술가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전시에 필요한 것들뿐 아니라 그들의 감각에서 배우는 게 많다.

특별한 운영 규칙이 있나?

보통 건물주와의 조율이 어려워서 작업에 제한이 있기 마련이다. 벽에 페인트가 튀면 안 된다든지, 사용하면 안 되는 도구가 있다든지. 이 건물의 경우 주인이 처음부터 작업실 용도로 임대를 해준 것이어서 특별한 규정이 없다. 지속적인 숙박만 아니면 야간작업을 하는 것도 자율적이고 자유롭다. 다만 공동작업실이기 때문에 작업상의 소음이나 화약 약품 사용 등은 사전에 조율을 하는 편이다.

개인 영역이 분명한 예술가들이 불편함을 가지진 않는지?

예술가들이 개인 공간을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적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동작업실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공동작업실은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현대 미술의 표현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본인이 전공한 게 아니더라도 다른 작가가 다루는 재료와 매체, 주력하는 표현 방법 등을 교류하는 장이 된다. 서로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며 실제로 상호 도움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작업이 발전하거나 전시를 열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인터뷰 사진 운영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점이 있다면?

처음 이 공간을 기획할 때 작업실다운 작업실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임차료 문제부터 작업실의 위치, 공간 내에서 시설 사용의 제약 등으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워져야 작업실로 의미가 있다. 이런 성격의 작업실 운영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데, 가능한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원칙이다. 작업실 사용에 있어 어떤 권유는 하지만 제약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운영하면서 예술가들의 삶과 복지 차원에서 봤을 때 작업실 문제가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80년대부터 홍대 부근에 작업실이 많이 생겼다. 6년 전 망원동으로 작업실을 이전할 때만 해도 이 근처에 작업실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역시 임차료다. 이곳을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동안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달이라도 월세 인상을 요구한다면 공간을 잃게 된다. 작업실 대부분이 처한 상황이 이와 같다.

작업실 커뮤니티 사이트도 운영 중인데, 예술가들이 주로 원하는 작업실 조건은?

도심 안에 있어야 한다. 교외로 나가면 생활비용이 낮아지지 않겠냐는 얘기를 종종 듣는데 예술가의 현실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선 젊은 작가들은 차가 없다. 또한 생계유지를 위해 다른 직업을 부수적으로 가지고 있다. 도심을 벗어나면 재료를 구하는 문제부터 작업 자체가 어려워지고 다른 직업을 갖고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예술가들이 작업실에서만 작업을 하는 게 아니다. 전시를 연계하거나, 협업을 하거나, 생업을 작업과 연결하는 등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모인 거리, 지역이 유니크해지고 특별해진다. 낙후된 곳에 가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가치를 부여하는 게 예술가들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만든 곳에서 예술가들이 밀려나게 된다는 게 문제다.

홍대권을 제외하고 주로 어느 지역에 작업실이 분포되어 있나?

홍대 권역이 넓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홍대 부근이 희망지역 1위다. 화실이 많아서 생업을 구하기 용이한 점,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수월한 점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외에는 대체로 게릴라식으로 곳곳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패턴이다. 2, 3년 전부터 문래동, 이태원, 성수동 등에 많이 생겼지만 전반적으로 꾸준히 유지되는 경우는 드물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 현실적 상황이 계속 언급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작업실도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얼마 전 처음 만나는 예술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 번도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없는데도, 모두 같은 고민과 이상향을 가지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일단 작업실이 어렵다는 것, 그리고 작업실 지원이 시혜적인 차원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사회적 역할과 특성을 재정립하려는 노력이 동반되는 올바른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통 인식이 있었다. 작업실 운영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이야기가 임차료로 수렴되는 게 안타깝지만 그만큼 급박한 현실이고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다행히 올해부터 정책적으로 작업실 공간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 주목해야 인터뷰 사진 가까이에서 예술가들을 지켜보면서 창작활동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여겨지는 건 무엇인가?

본업이 예술이고 직업이 예술가인데 그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나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작업실 오픈 초반에 작가들이 작업실에 잘 나오지 않아서 전화를 했다. 누구는 강의를 하고 있고, 누구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특히 신인 작가들은 작업만으로 생활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작업에 투자해야 할 시간을 생계를 위해 하는 다른 일로 채우게 된다. 신인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일정 기간 동안 수입이 없거나 불규칙적이라는 점에서 예외가 많지 않다.

예술이나 예술가에 대한 인식 문제가 크다고 보나?

그렇다. 도심 안에서 예술가가 살아남느냐 못 살아남느냐의 문제는 곧 도시의 질과 연결된다. 외국의 경우 특정 도시에서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그들이 도시를 변화시킬 거라고 믿는다. 자본주의 논리로 어떤 이윤이나 생산성만을 고려할 때 예술가들이 가진 사회적 역할을 단순하게 이해하게 되는 위험성이 따른다. 예술을 자본주의 논리로밖에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거다. 예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 이런 부분을 강조해서 접근하려는 데서 한계가 생긴다. 지원금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받았으니 사회적으로 환원하라는 요구가 당연해진다. 향유자나 감상자는 없고 소비자만 남는 것이다. 예술 자체가 사회 환원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 이윤을 남기거나 상품 가치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예술이나 예술가를 소비한 후 소외시키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얘기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갈 길이 멀지만 변화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동안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현실은 녹록치 않아도 매일매일이 재밌고 즐겁다. 예술가들에게는 직장 같은 곳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늘 새롭고 무언가를 함께 찾는 공간이다. 거의 매일 만나고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모두 다 친하지 않더라도 잘 지내왔다. 작업을 서로 도우면서 관계가 돈독해지는 예술가들도 많다. 여러 문제로 그림을 포기하려던 분이 있었는데 주위의 만류와 응원으로 지속하게 되었고 작품이 좋아지면서 전시까지 하게 되었을 때 정말 기뻤던 게 기억난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작업실과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느껴지는 스스로의 변화도 있다. 또, 1년에 한 번 진행하는 오픈 스튜디오도 떠올리면 뿌듯한 기억이다. 작년엔 못 했는데 2월 중으로 계획 중이다.

곧 작업실을 비워야 한다고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건물주 사정으로 6개월 정도 비웠다가 다시 들어오게 됐다. 짧은 기간이라 따로 건물을 임차하기도 어렵고, 또 이만한 평수의 작업실을 지금의 비용으로 이 부근에서 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서 고민을 많이 했다. 다행히 현재 합정동 갤러리를 당분간 작업실로 쓰기로 건물주와 합의가 되었다. 가정집을 개조한 곳이라 여기와는 분위기가 다를 것이고 환경을 바꾸어 재미난 기획들을 해보자고 작가들과 이야기했다. 현실적으로 건물주의 지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은 같은 상황이라면 운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있을 정책적 지원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최근 여러 기관에서 예술가들의 작업실 문제에 관심을 갖고 라운드 테이블 등 논의를 진행하고 있어서 반갑다. 작업실 형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부터 1인 작업실과 공동작업실, 음악 작업실, 미술 작업실, 현대 매체 작업실 등을 구분하고 적절하게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들이 있다고 들었다. 임대료나 다른 이유로 작업실을 비워야 하는 불안감 없이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예술가들에게는 꼭 필요하다. 최근 대규모 전시 공간이 많이 생겼지만 정작 그곳을 채울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들이 도심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지원이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