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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반은 여성이다. 그렇다면 예술계의 반은 여성일까. 아니다. 수적인 것을 차지하고라도, 차지하는 위상만 보아도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문화예술계 또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여성예술인들이 발 딛고 선 기울어진 운동장 위엔 숱한 걸림돌들이 굴러다닌다. 양육과 살림, 예술 활동까지 짊어진 기혼 여성예술인들의 ‘삼중고’라는 바위들도 셀 수 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 기혼, 미혼 가리지 않고 여성예술인 전체를 향해 굴러오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바로 ‘성폭력’이라는 거대한 바윗돌이다. 그동안 지하에 묻혀있던 이 바위는 작년 문화예술계에서 촉발한 미투 운동으로 세상에 실체를 드러냈다.
‘지금 여성예술인을 비롯한 문화예술계는 그 거대한 바위들을 드러내고, 깨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8월 20일 ‘#미투 이후, 문화예술계 성희롱, 성폭력 방지 정책의 변화와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 세미나는 미투 이후 정책과 법, 제도적 성과와 한계, 앞으로의 개선 과제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미투 운동 이후 중간 점검의 성격을 띤 이 세미나에서 눈길을 끈 주제가 ‘문화예술계 성희롱, 성폭력 실태 조사’이다.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예술인 12,673명을 대상으로 지난 2017년 12월 발표된 이 조사를 통해 우리는 현재 문화예술계의 성관련 인식과 성폭력 실태 등을 엿볼 수 있다. 예술 현장에서의 성관련 인식 조사에서는 ‘여성들은 외모나 성적인 매력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는 항목에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그림 01) 이는 성별에 따라 기회의 차이, 평가, 역할 등에 차이가 존재한다고 예술인들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예술인의 58.2%는 성폭력 관련 공공서비스를 인지하고 있으며, 성폭력 피해자 중의 57.8%는 성폭력 관련 공공서비스를 인지하고 있다. 이중 11.1%가 공공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02) 예술인들 절반 이상이 인지는 하고 있으나 이용은 꺼려 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예술 분야에 활동하면서 예술인의 성추행(폭행/협박 미수반)을 목격한 경험률은 57.4%로 나타났다.(그림 03) 예술 분야 종사자 절반 이상이 동료 예술인의 성추행 피해를 목격하거나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로는 선배 예술가가 제일 많이 손꼽혔다. 그 다음으로 교수나 강사에 의한 피해가 많았고, 동료 및 후배 예술가 역시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예술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우, 가장 많이 겪은 피해는 ‘언어적 성희롱’, ‘시각적 성희롱’, ‘폭행/협박 미수반 성추행’, ‘스토킹’, ‘폭행/협박 수반 성추행’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그림 04)
위 실태조사를 보면, 현재 예술계에는 여전히 위계를 이용한 성희롱과 성폭력이 만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의 방지책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피해자 개인이 개별적으로 대응한다면 반복될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기울어진 운동장과 그 위를 굴러다니는 숱한 바위들, 그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지렛대는 바로 예술인들의 연대이다. 여성예술인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할 일을 찾아서 하고, 알아야 할 정보를 서로 나눠야 한다. 그 꾸준한 연대만이 여성예술인들을 오롯이 예술이라는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