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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되는 코로나19로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는 문화예술계에 최근 가문 땅에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뮤지컬 〈친정엄마〉 제작사 대표의 잠적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소액체당금’이 지급되었다는 것.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신문고’를 통한 첫 수혜사례의 주인공이기도 한, 김아선 배우를 만나 불공정행위에 따른 일련의 사태에 대해 들어보았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못 따라가는 현실을 꼬집으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지만, 21세기 우리의 세상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변화의 중심에 있고 그에 따른 논리와 가치관 또한 진보적, 진취적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특히 최근 예술과 생활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힘겨워하는 현실 예술인들에게 전해진 ‘소액체당금’ 지급 소식은 시대적 변화와 가치를 반영한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계의 배우나 스태프들이 두루두루 이어지고 엮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서로 믿고 이해하며 작품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게 제작자 입장에서는 무리 없이 공연이 잘 진행되기를 바랄 것이고, 우리 배우나 스태프들 또한 성공리에 작품을 끝마치고 다음 기회가 약속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대합니다.”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의 소중함 때문에, 출연료 체불 같은 금전문제가 발생해도 선뜻 나서서 해결하거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김아선 배우.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상황이 발생해도 인간적 유대로 맞물려 돌아가는 문화예술계의 특성상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많은 예술인들이 어쩔 수 없이 용인하고 감내해왔다고. 하지만 그동안 타성에 젖어 이어져 온 것들에 대해 이번처럼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던 건 후배와 스태프들 때문이기도 했다.
“제가 뭐 거창한 책임의식이나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다함께 열심히 노력한 것을 인정받고 싶었고, 이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예전 그때가 맞는 것처럼 순응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배우나 스태프들이 이 작품을 위해 서울을 비롯해 지방공연까지 몇 개월씩을 계획하고 올-인했는데, 난데없는 상황으로 후배들은 다시 오디션을 봐야하고 캐스팅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다 일상을 이어가기 위한 생계까지 걸렸잖아요.”
(좌) 뮤지컬 〈친정엄마〉 포스터, (우) 뮤지컬 〈친정엄마〉 출연진
서울 마지막 공연을 사흘 앞둔 상황이었던 지난해 10월 21일, 뮤지컬 〈친정엄마〉 피해 예술인 중 25명은 그렇게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신문고’를 두드렸고 신고에 따른 처리절차를 거쳐 얼마 전 소액체당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소액체당금’ 제도란 사업체가 폐업 등으로 사업주가 지불능력이 없게 되어 체불된 임금 및 퇴직금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사업주를 대신해서 근로자에게 먼저 지급하는 것으로, 여기서 제기되는 것이 바로 예술인의 근로자성이다.
“먼저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배우들은 예술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연습하고 공연하고 오후 10시에 퇴근해도 근로자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거기다 많은 배우들이 프리랜서이자 비정기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배우의 답변에서도 느껴지듯 그동안 소액체당금은 근로자에게 해당되는 제도로 예술인들은 대상이 되기 힘들었다. 대부분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계약서를 쓴다 해도 비정기적으로 활동하는 예술인에 대한 ‘근로자성’을 입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이러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예술인 신문고’를 통해 예술인들에 대한 근로자성 확인 및 체불임금 조사 및 자문, 고용노동부 신고 시 법률지원 및 체당금 청구 지원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전화를 돌려 서류를 준비하게 하고, 때때로 심리적 위축과 불안을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함께해왔지만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까지의 법적 문제며 변호사, 노무 관계자와의 면담 등의 행정 절차까지 재단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함께한 동료들을 대표해 배우는 거듭 고마움을 전한다.
뮤지컬 〈친정엄마〉 사례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예술인에 대한 근로자성이 인정되어 ‘소액체당금’을 지급한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언론과 미디어의 이슈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번 피해 사례는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친 문제이자 예술인 권익에 반하는, 총체적 문제이기도 했다.
“사실 〈친정엄마〉는 너무 큰 사건이었어요. 신고부터 결과까지 10개월여가 소요되었지만 이슈의 중심에 있다 보니 빠르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해요. 이번 일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행위에 대해 예술인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방안이 생겼지만 이것만이 대안일까요,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네요.”
그동안 걱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봤던 뮤지컬계 선․후배들에게 격려와 환호를 받았고 자신 또한 두드리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고, 찾지 않으면 원하는 바를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김아선 배우, 무대를 향해 열심히 날갯짓하는 후배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계기이자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일과 지원사업에 대해 알게 된 것을 나름의 소회로 피력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 일이 아니면 관심도 없고, 잘 모르잖아요. 이번에 많이 알게 되고 느끼게 된 거 같아요. 사람과 제도와 단체가 있다는 걸, 그리고 배우들도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깨어있어야 한다는 걸요. 예술은 생활을 떠나서 있을 수 없고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까요.”
마치 무대에서 독백을 하듯 배우의 소리에서 울림이 느껴진다. 이로 인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역할에 대한 무게감 또한 더해지는 듯하다. 예술인들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보호를 위해 더욱 민첩하게 움직인다면 ‘예술, 불공정행위와 이별하기’는 한결 빨라질 것이고 재단은 ‘예술인이 더욱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첫 사례가 그 한 걸음이었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