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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첫 시행된 예술인파견지원-예술로 사업(이하 예술로 사업)은 기업·기관의 문제(이슈)를 예술인들의 예술적 역량으로 풀어내도록 하여 예술인들에게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적극적 예술인 복지사업이라 할 수 있다.
예술로 사업 중 협업사업이 예술인(리더예술인, 참여예술인)과 기업·기관의 자율매칭으로 상호 협의된 주제에 기반한 예술협업활동을 한다면, 기획사업은 참여주체(리더예술인, 참여예술인, 기업·기관)가 사전에 협업주제를 기획하여 팀 단위 예술활동을 제안하는 조금 더 밀도 있는 단계의 예술협업활동을 펼치게 된다. 특히 기획사업은 최근 3년 이내에 함께 활동했던 예술인이 과반 이상으로 구성되어야 신청할 수 있다.
올해로 9년째를 맞이하는 예술로 사업의 협업사업과 기획사업에서 각각 리더예술인으로 활동한 정기훈, 홍철희 리더예술인에게 직접 해당 사업에 참여한 경험에 대해 들어보았다.
정기훈은 시각예술 작가다. ‘사회적 규칙의 재발견’이란 주제로 정해진 규칙과 시간 안에서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무의미한 행위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한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예술로 사업에 2015년 참여예술인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거의 매해 7년째 본 사업에 참여중이다. 올해는 ‘예술로 협업사업’의 리더예술인으로 한국공항공사와 작업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가 제안한 협업주제는 첫째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의 격리대합실 내 이용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예술 프로젝트, 둘째 민원인을 응대하는 고객만족센터 상담사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예술 워크숍이었다. 정기훈 리더예술인을 포함한 총 6명의 참여예술인들은 협업주제에 맞춰 활동을 세분화하고 ▲상담사를 위한 예술 워크숍 ▲청주공항 격리대합실의 이용객을 위한 포토존 작업 ▲김포공항 지하 연결통로의 음원 작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코로나19로 운영 부분에 변화가 컸습니다. 국제선은 봉쇄되었지만 국내선은 국내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비행노선이 증가했습니다. 국내선 격리대합실에 대기인원이 많아졌고 이용객이 많아지면서 고객만족센터 직원들의 노동강도도 높아졌어요. 이런 상황에서 한국공항공사 측은 두 가지 협업주제를 제안했습니다. 하나는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 격리대합실 내 이용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예술 프로젝트였고, 다른 하나는 강성 민원을 응대하는 고객만족센터 상담사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예술 워크숍이었습니다.
여러 예술 장르가 모인 특성을 살려서 세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첫 번째로 이혜진(연극), 이혜인(무용) 예술인이 고객만족센터 상담사들을 위한 예술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공사 측에서는 ‘상담사의 감정노동을 해소할 수 있는 워크숍’을 제안했지만, 직접 센터를 방문해 상담사분들과 인터뷰를 나눠본 결과, 그분들은 스스로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을 ‘감정노동자’로 보는 시선을 불편해하더군요. 그래서 감정노동이란 단어 대신 힐링이란 단어를 택해서 ‘춤추는 공항’과 ‘일상 비일상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두 가지 예술 워크숍을 운영했어요. 전자는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감정을 표출해보는 시간으로, 후자는 나에게 집중하여 마음 방 그리기, 초상화 그리기 등의 시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프로그램은 현재 진행중인데요. 저와 옥세영(시각예술) 예술인이 청주공항에서 공항 내의 이미지를 사진 찍고, 그 사진을 조합해서 현대미술 작품 형태로 만들고 격리대합실 내에 포토존을 만들고 있어요. 초반 계획은 김포공항 내 넓은 창문을 이용한 스테인드글라스 필름 시공이었는데, 시설담당 부서에서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청주공항에서의 작업으로 선회했어요. 마지막으로 김은비(국악), 조지훈(음악) 예술인이 음원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포공항 지하 연결통로를 통해 울려나갈 음악을 통해 이용객들이 새로운 감각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두 프로젝트는 진행중이니 예술 워크숍을 중심으로 말씀드릴게요. 저희는 상담사분들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예술을 접하고 동시에 힐링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했어요. 하지만 이런 예술 워크숍이 처음이다 보니 고객만족센터나 상담사분들 모두 낯설어서인지 거부감을 느끼시더라고요. 그럴수록 저희는 열심히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참여를 유도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예술은 일단 몸으로 경험해보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상담사 20분 중 16분이 참여하셨는데, 참여하는 내내 즐거워하셨어요.상담사분들은 전화 응대만으로도 업무량이 많다 보니 서로 간에 대화가 거의 없으셨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이분들이 수다쟁이가 되셨어요(웃음). 속마음을 터놓고 몸을 움직이며 밝게 웃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어요. 직원들의 이런 밝은 모습은 처음 본다며 센터장님도 거듭 저희에게 감사하다고 하셨고요. 상담사분들도, 그리고 저희 예술인들도 모두가 행복했던 아름다운 시간이었어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과 소통하고 협업하면서 타 장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걸 꼽을 수 있고요. 무엇보다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가,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된 게 가장 큰 변화 같아요. 이런 변화가 참여예술인 각자가 해온 예술작업의 시야도 더 넓혀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전 더 많은 예술인 동료들이 사업에 참여했으면 합니다. 물론 다양한 이들이 모이기에 협업이 쉽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분명히 그 과정이 좋은 자양분이 되어줄 것입니다. 작업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작업을 위한 발판이 되어줄 수 있거든요. 저 역시 예술로 사업으로 만난 동료들과의 인연을 이어나가 작업에서 새로운 협업을 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홍철희 리더예술인(경희의료원 기획사업)
홍철희는 극단 고래 소속의 연극배우다. 지난해에 이어 2년째 경희의료원과 함께 예술로 기획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까지 협업사업 4년, 기획사업 2년차로 꾸준히 예술로 사업에 참여해온 홍철희 리더예술인은 첫해에는 활동비를 받기 위해 시작했다면, 점차 사업에 참여하는 햇수가 늘어나면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찾아나가는 데 더 의미를 두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연극이란 장르가 단순한 공연이 아닌 새로운 형태로 사람들과 만나고 활용될 수 있을지 찾아나가는 실험을 다각도로 진행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형태로 공연 예술을 시도하던 중에 극단 고래와 경희의료원이 협업하여 한차례 온라인 낭독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경희의료원은 암병동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담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로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낭독 공연을 계기로 예술인과 기업이 함께 협업하여 할 수 있는 예술 프로그램 개발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예술로 기획사업을 준비하면서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을 섭외해야 하고 지원서를 직접 써야 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크게 느꼈지만 다년간 예술로 사업을 해오면서 활동의 방향성과 병원 측의 니즈가 잘 맞아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연극이란 한 개인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장르이기에 개인의 기록물 작업을 해보고 싶었고 그 대상이 환자분이라면 더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원 역시 그런 활동을 원했던 터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희의료원과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엔 ‘이름’을 주제로 나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만드는 〈이름〉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올해는 미술,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모여 〈나〉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참여자들이 내 인생의 키워드를 찾아가기 위한 마인드맵을 직접 그리고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나의 이야기를 담아 자서전 같은 영상을 만들고(나의 키워드), 내가 나를 직접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inner mirror), 나를 위해 작곡된 나만의 음악을 들으며 나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 이를 직접 낭송하는 프로그램(시가 흐르는 음악) 등을 진행했습니다. 나의 시와 자화상 등을 액자에 담아 시 낭송 영상과 함께 병원 내에 전시했고요. 또 참여자의 이름으로 된 영상과 포토북을 제작하여 선물로 드렸습니다.
작년에는 참여자가 3명이었는데 올해는 참여자 수도 늘리면서 작년에 진행했던 〈이름〉 프로그램의 대중화, 사업화에 목적을 두고 그 확장을 위한 첫 단계로 〈I(아이)〉라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고민했습니다. 어플을 통해 참여자와 소통하며 정보 수집을 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고 더 나아가 환자와 직원분과의 소통 공간,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기를 원하거나 예술활동에 관심 있는 환자분들과 예술인을 연결하는 플랫폼 등의 역할까지 기대했지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기간이 너무나 짧았고 자본이나 기술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대형 플랫폼의 게시판을 활용한 단순 형태의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고 예술인이 로고를 디자인했습니다.
지난해 사업의 경우, 참여한 환자분들이나 병원, 재단의 평가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 활동이 우리 예술인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저는 예술로 사업은 그 결과가 불투명할지라도 저희 같은 예술인들이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엔 예술인들의 질문이 있어야 하고요. 그렇기에 아무리 잘된 사업이라고 해도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자서전을 만드는 업체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참여예술인도 지인을 배제하고 웃기지만 사업이 선정되기도 전에 자체적으로 모집 공고를 내어 지원 동기를 듣고 활동에 대한 의미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이 사업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이 있는 김채원(미술), 이정주(연예), 전지민(복수) 등의 예술인이 모이게 되었죠. 저는 예술을 활용한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같은 사업으로써의 가능성에 포커스를 맞춰봤고요. 이런 구상이나 계획이 아직 현실성이 부족하고 수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 실험 자체가 하나의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왼쪽부터) 곽승배(경희의료원), 전지민(음악), 김채원(미술), 이정주 (연예), 홍철희(연극)
다양한 예술 장르가 어울리면서 타 장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것, 타 장르 예술인들과의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 IT 기술과 관련된 분야에 관심이 생긴 것 등 예술로 사업을 통해 얻은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예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것이 저에게 가장 큰 성취가 아닐까 싶습니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 인지도를 얻고 돈을 잘 벌고 싶다는 목적만 바라보게 되는데 예술로 사업을 하면서 예술이 왜 필요하지, 예술은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의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예술인이라는 자부심, 자긍심을 찾는 과정이 되었고요. 단순히 개인적인 고민에서 벗어나 예술인으로서 예술에 대해 좀 더 확장된 고민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이런 변화가 앞으로 제가 활동하는 데 큰 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