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를 위해, 예술가와 더불어, 예술가 모두가
- 문재인 정부 예술인 복지정책의 방향과 과제
2017. 12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예술인 복지정책 종합토론회〉가 지난 11월 15일(수) 오후 2시,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열렸다. 토론회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박영정 예술기반정책연구실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의 기조발제(문재인 정부의 예술인 복지정책 방향과 과제)를 시작으로 예술인소셜유니온 김상철 운영위원(예술인 노동권리와 생활안정 실현을 위한 정책과제), 근로복지공단 이근열 차장(예술인의 사회보험 적용을 위한 정책과제: 고용보험을 중심으로), 국민대 법학과 황승흠 교수(예술인의 권익보장과 불공정행위 근절을 위한 정책과제: 예술인 복지법 개정을 중심으로)의 발제가 차례로 있었다. 발제가 끝난 후 잠시 휴식을 취한 발제자와 참석자들은 질의응답과 자유토론을 이어갔고, 예정된 90분을 꽉 채우며 열띤 분위기로 토론회는 마무리되었다.
〈예술인 복지뉴스〉에서는 이번 토론회의 주제와 방향을 잡아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의 기조발제를 소개한다. 지면 관계상 일부 내용을 편집했다.
예술인 복지정책 종합토론회 자료집2017년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보고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새 정부의 5대 국정목표를 제시했다. 그중 국가문화정책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국정목표에 포함되었다.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라고 제시된 국가문화정책에는 다음 7개의 국정과제가 담겨있다.
-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의 시대
- 창작환경 개선과 복지 강화로 예술인의 창작권 보장
- 공정한 문화산업 생태계 조성 및 세계 속 한류 확산
- 미디어의 건강한 발전
-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과 생활의 균형 실현
- 모든 국민이 스포츠를 즐기는 활기찬 나라
- 관광복지의 확대와 관광산업 활성화
이 7개의 과제 중에서 예술인 복지정책은 창작환경의 개선과 함께 다루어졌는데,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1) 예술인 권익보장을 위한 공정성 협약발표와 예술가 권익보장을 위한 법률제정(2018년), 2) 공정한 보상체계 구축을 위한 ‘문예진흥기금’ 등 정부 지원사업 참여 시 표준계약서 의무화, 표준계약서 보급 지속 추진, 3) 예술인 복지 강화를 위해 고용보험법 등 관계 법령을 개정하여 예술인 고용보험제도 실행 및 예술인 보험료 지원(2019년), 4) 문화예술진흥기금 관련, 단기적으로 일반예산, 복권기금, 관광기금, 체육기금 재원을 활용하여 안정적으로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재원 대책 마련, 5) 국민 중심의 새로운 문화행정체계 구축을 위한 지원기관 독립성 확보, 심사 투명성 확대, 현장의 정책 결정 참여 확대 및 문화옴부즈맨 제도 도입 등이 구체적인 과제로 제시되었다.
새 정부 예술인 복지정책과 관련하여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의 실행 여부이다. 예술인의 창작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예술인들의 안정된 생활환경 마련이 중요한 조건이고,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는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정책이다. 문제는 설득력 있는 근거 마련과 객관적인 실행 장치, 프로세스, 그에 합당한 재원이다. 또한,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의 과정에서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용보험과 창작 보상에 대한 합당한 지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예술인의 복지와 예술 노동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가 먼저 정리될 필요가 있다.
예술가의 권리: ‘노동’과 ‘복지’ 사이예술가의 권리는 창작의 권리라 할 수 있다. 예술가에게 창작의 권리는 일차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예술가의 환경 보장의 차원에서 복지는 표현의 자유와 함께 중요한 권리로 볼 수 있다. 창작환경으로서 예술가 권리는 ‘노동’과 ‘복지’ 사이에 있다. 이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술가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져야 한다.
예술가의 정의예술가란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독창적으로 표현하고 혹은 이를 재창조하는 사람, 자신의 예술적 창작을 자기 생활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생각하는 사람, 이러한 방법으로 예술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 고용되어 있거나 어떤 협회에 관계하고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거나 인정받기를 요청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1980년 10월, 유네스코는 제21차 총회에서 발표한 ‘예술가의 지위에 관한 권고’에서 예술가를 위와 같이 정의했다. 유네스코의 정의에서 주목할 것은 예술가의 ‘생활’과 ‘인정’에 대한 설명이다. 독창적인 표현능력으로 창작행위를 하는 사람이라는 예술가의 일반적 정의는 여기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예술가의 창작활동과 자기 생활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며, 예술가는 어떻게 인정받는가이다. 미국 뉴욕 주의 법은 예술가를 시장적 정의, 교육과 협회의 정의, 자신과 동료에 의한 정의로 구분해서 설명하는데, 예술가로서 창작활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이 시장적 정의라고 한다면, 예술가 협회나 조합에 가입하거나, 교육기관에서 예술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람은 교육과 협회의 정의에 해당된다. 반면 자신을 스스로 예술가로 여기고 창작활동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며 함께 활동을 하는 동료에 의해 예술가로 인정받는 경우는 자신과 동료에 의한 정의에 해당된다.
이러한 세 가지 정의를 고려하면 예술가는 단지 창작활동의 공식적 평가만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는 일상생활 속의 창작활동 속에서, 그리고 창작활동에 대한 자기 확신을 통해서 인정받을 수 있다. 예술가를 전통적인 장르로 구분하여 정의하거나 특정한 자격으로 정의하지 않고, 예술에 대한 활동이나 태도로 정의하려는 시도 역시 예술가의 정의에서 일상과 활동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예술가의 권리 역시 예술가의 정의로부터 나온다. 예술가의 권리는 크게 창작할 수 있는 권리, 즉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와 자신의 창작물을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 즉 지적재산권의 권리로 구분해서 정의할 수 있다. 전자는 창작 행위자로서의 예술가의 권리, 후자는 저작권자로서의 예술가의 권리를 보장, 보호하는 것이다. 헌법은 창작행위자로서의 예술가에 대한 보호를, 저작권법은 저작권자로서의 예술가의 보호를 강조한다. 창작행위의 권리와 창작물의 권리는 예술가의 정의에 있어 ‘생활’과 ‘인정’이라는 의미를 충분하게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가의 권리가 예술 창작의 과정과 결과 모두 보장받는 것이라면, 그 권리는 예술가들의 생활 속에서 마땅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창작’과 ‘생활’이라는 것은 예술가들의 권리에 있어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생활은 창작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창작의 환경 혹은 조건이다. 예술가에게 창작 역시 생활과 분리될 수 없다. 창작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권리에 있어 창작을 위한 ‘노동’과 생활을 위한 ‘복지’의 문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예술인 복지의 양가적 성격예술가의 보편적 복지와 특수한 복지에 대한 상호작용적 인식 없이는 현행 예술인 복지법은 굳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예술가들에게 보편적 복지만 필요하다면 차라리 근로기준법에 예술가의 복지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만일 예술가에게 특수한 복지만 필요하다면, 차라리 문화예술진흥법에 예술가의 특별한 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 예술인 복지법이 굳이 필요하다면 정작 중요한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예술가에게 더 많은 복지를!”이라는 슬로건 이전에 예술가들의 권리와 자립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정책적인 연계 사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예술가의 권리는 예술가의 복지에 우선하며, 예술가의 자립은 예술가의 지원에 앞서기 때문이다.
자율적인 예술창작공간의 근본적인 생태위기 이전에 우리는 이미 예술인의 절대적 생존 위기의 순간들을 목도한 바 있다. 2010년 11월 인디뮤지션 이진원이, 2011년 1월 극작가 최고은이 열악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한 사람은 인디음악 신에서 잔뼈가 굵은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리더였고, 다른 한 사람은 명문 예술대학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 전도유망한 극작가였다. 두 사람 모두 건강 악화로 인한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지만,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가난한 예술가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적나라한 현실이 공론화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예술가 복지법」이 급하게 제정되었다. 그러나 예술인 복지법은 사실상 예술인이 처한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안적 제도라기보다는 예술인 앞에 놓인 수많은 모순적 현실을 보게 하고 그것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예술인 현실을 비추는 ‘화사한 거울’이 된 듯하다. 예술인의 정의,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사회보장 및 예술인복지재단의 법적 근거를 명시한 예술인 복지법은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조항의 수준에 비해 예술인의 사회보장에 대한 조항은 일반론에 머물거나 지원의 수준이 매우 미약하다.
「예술인 복지법」의 한계
예술인 복지법이 갖는 큰 문제점은 예술인 복지에 접근하는 관점에 대한 확고한 인식 혹은 이념이 없다는 데 있다. 이 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따지기에 앞서 젊은 예술가들의 불행한 사망으로 인한 사회여론 악화를 우려한 정부와 해당 입법 의원들의 졸속 추진, 법의 제정 취지에 무감하거나 심지어는 예산증액을 우려하는 경제 관료들의 부정적인 인식 등을 충분히 고려해도, 재정 운용과 사실상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예술인의 복지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식 정도는 법에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했다.
예술인 복지에는 두 가지 관점이 공존한다. 하나는 보편적 복지라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특수한 복지라는 관점이다. 보편적 복지로서의 예술인 복지는 예술가가 굳이 예술가이기 때문에 복지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이 갖는 복지의 보편성을 강조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예술가들도 일반 노동자들과 동일한 관점에서 노동에 대한 보편적인 복지혜택을 누리면 된다. 근로자로서 4대 보험이 적용되고, 실업 상태에서 실업수당을 받으면 된다. 문제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예술가들의 노동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기준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예술인 복지법에서도 이 법의 기본이 되는 예술가들의 노동에 대해 정의하지 않고 있다.
예술인 복지법이 예술인의 실질적인 노동-창작의 특수한 권리에 대한 보호 장치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예술인들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노동-창작 권리를 위한 많은 이슈들을 쏟아놓고 있다. 예술가의 창작지원 환경의 위기와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비 인정, 문화예술 분야 기관 종사자들의 열악한 임금체계, 예술인 실업급여제도의 실질적 도입, 청년예술가의 일자리 위기, 예술 강사들의 처우개선 등 많은 현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예술계 현장의 목소리는 새 정부의 예술인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예술인 복지정책 패러다임 구제에서 권리로예술인 복지정책을 가난한 예술가를 구제하는 정책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생활환경이 어려운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 구제의 정당성이 ‘궁핍’을 해소하는 것에 있다면, 그것은 아주 협소한 시각에 그칠 수 있다.
예술가에게 복지정책은 예술가의 창작활동과 분리될 수 없다. 창작활동은 어떤 점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긴 하지만, 예술가가 속한 공동체에 미적인 즐거움과 감성적인 행복을 준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다. 예술가의 창작활동이 사회적 가치를 가진다면, 그 활동을 지탱하기 위한 생활환경의 조건들을 최소한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은 보편적 복지의 논리와 모순되지 않는다. 예술인의 복지는 창작활동을 위한 환경과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창작의 권리와 함께 동일 선상에서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가를 구제하는 정책을 넘어 창작의 생활환경을 개선하여 예술가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선별적 지원에서 보편적 지원으로현재 예술인 복지정책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예술가들을 공모 방식으로 일부 선별해서 지원하는 ‘선별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재원의 한계로 인해 일정한 조건에 따라 해당되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지원해주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정책의 가치와 방향은 예술인들이 창작지원을 받기 위해 공모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복지의 지원 조건이 공모의 신청자격으로 동일시되고, 결정 기준이 선별적 수혜자를 결정하는 일종의 ‘공모 심사’와 동일시된다면, 적어도 이러한 방식은 보편적 지원의 가치와는 맞지 않는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예술인 복지에서 선별 과정은 지원자의 자격 조건을 정하는 과정이지, 심사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후적 대응에서 선제적 대응으로같은 복지정책이라도 비극적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 마련의 목적보다는 선제적 투자의 목적이 더 필요하다. 예술인 복지의 지원 목적도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위해 먼저 최소한의 생활 조건을 먼저 지원하는 것이어야 하지, 창작활동의 결과를 먼저 보여주면 나중에 생활안정에 필요한 것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복지정책이 창작활동과 연관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지원의 조건이 창작활동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가의 창작활동에 따른 ‘정산’이 아니라, 창작활동의 조건을 마련하는 ‘투자’가 되어야 한다. 예술가에게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후에 사후에 대책을 마련하는 사후적 대응에서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복지를 미리 마련하는 선제적 대응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활동지원에서 생활지원으로현재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원하는 주요 사업들은 대체로 활동지원의 성격이 강하다. 창작준비금 지원 사업이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모두 예술인들에게 일정한 활동을 요구하거나 전제한다. 한정된 예산의 지원 근거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활동을 전제로 지원해서 문제의 소지가 없도록 하는 것이 행정의 관점에서는 필요한 조치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인 복지정책이 창작활동의 안정적 환경보장을 위한 공공지원에 그 목적이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예술가들의 입장에서는 활동지원은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주거, 보험 등 근본적으로 창작에 필요한 사전 활동 지원의 방식에서 예술가들의 삶이 안정될 수 있는 생활지원으로 가야 한다.
사회적 관리 장치에서 상생 협치로
예술인 복지정책이 가난한 예술가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공급자 과잉상태의 예술가들을 관리하는 장치로 활용된다면, 그것은 가장 불행한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예술인 복지정책이 예술인 인구와 활동을 통제하는 일종의 ‘통치성’의 관점에서 사회적 관리 장치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예술인들을 ‘지원’과 ‘혜택’으로 권력의 장치 안에 가두려 했던 과거 독재정권의 문화정책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인들과의 상생과 협치의 관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예술인들의 사정은 예술인 본인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가를 위해’, ‘예술가와 더불어’, ‘예술가 모두가’라는 이 세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예술 복지정책의 주요 방향과 과제문재인 정부의 예술인 복지정책의 주요 방향에 대해서는 세 가지 핵심방향을 제시하고 싶다. 먼저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인에 대한 사회보장의 실현으로 가야 한다. 다만 예술노동은 일반적인 육체노동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술노동은 오히려 예술가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권리와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예술가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라는 인식도 팽배하다. 예술노동은 노동 일반의 성격을 가지면서, 미적·감성적 활동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다른 노동과 차이를 생산하는 특수한 노동의 형태를 지닌다. 창작은 노동 일반으로 환원될 수는 없지만, 노동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들에게도 노동의 권리에 해당하는 사회보장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 환경을 공정하게 만들고, 예술인 모두가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이러한 방향을 ‘공정 상생’이란 관점으로 정의할 수 있다. 예술인 복지의 공정 상생은 예술인이 공정하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과 더불어 역량의 차이와 관계없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술계에서 공정성은 그동안 많은 논란을 야기해왔다. (예술사업) 선정의 공정성, (다양한 예술 활동) 기회의 공정성, (지원기관·기업 주체인 갑과 지원 대상인 예술가) 관계의 공정성 등이 많은 시비를 낳았다. 지원사업의 결정이 과연 투명하게 이루어졌는지, 누구에게나 평등한 활동의 기회가 주어졌는지,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예술 감독과 스태프 사이의 지나친 위계질서에 따른 권력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닌지, 지원기관과 지원받으려는 예술가 사이에 충분한 소통과 교감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한국 예술계가 과연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하다. 이러한 문제들이 예술인 복지와 무관하지 않은 것은 복지라는 것은 단지 ‘돈’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관행’,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앞으로 재원, 제도, 관행, 관계를 모두 고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인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술인 복지는 예술가들의 ‘예술-삶’의 관점에서 그 시야를 넓혀야 한다. 예술-삶은 예술의 삶이 주는 심미적 경험과 삶의 예술이 주는 일상의 경험을 모두 포함한다. 예술-삶은 예술가에게 예술적 삶과 일상적 삶이 서로에게 전제된다는 점에서 분리 불가능하다. 예술인에게 일상의 삶이 예술을 위한 필요조건이라면, 예술적 삶은 충분조건이 된다. 예술인의 시간은 무대의 시간만이 아니라 반복적인 연습과 생활의 시간을 모두 포함한다.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예술가의 시간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예술가를 위한 시간, 예술가에 대한 시간, 예술가에 의한 시간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첫 출발점이다.
주요 정책과제(안)구분 | 사업명 | 사업목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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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조사 연구 |
예술인 직업군 분류와 실태조사 | 예술인 정의와 예술인의 영역별 직업군 분류를 통한 복지정책의 기본 데이터 제공 |
예술인 복지정책의 확산을 위한 타당성 조사 | 예술인복지정책의 정당성과 객관성 시급성 근거 마련을 위한 연구 | |
예술인 복지 최근 해외사례 연구 |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예술인 복지 최근 사례 분석을 통해 적절한 예술인 복지정책의 근거 마련 | |
예술인 사회 보장 |
한국형 고용보험 지원 | 현행 창작준비금을 본 취지에 맞게 확대 개편. 창작활동이 없는 시기에 예술인들의 실업급여 지급 |
예술인 산재보험 가입 지원 | 현행 산재보험 가입 지원 확대 | |
예술인 사회보장 상담 서비스센터 | 정보 접근과 이해가 부족한 예술인들을 위한 상담을 통해 정보에 소외되지 않도록 지원 | |
공정 상생 생태계 조성 |
표준계약서 확대 및 전 영역 의무화 | 공연뿐 아니라 예술계 전 영역 콘텐츠산업 분야까지 확대하여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 |
예술계의 불공정 관행 신고센터 | 티켓 강매, 노동착취, 부당지시, 노예계약 등 예술인의 창작활동 영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갑질’과 관행을 근절하는 신고센터 | |
예술인 직업권 보장 |
예술인 파견지원 확대 | 기업에서 예술인의 참여활동을 지원 기존의 예술인 파견지원을 확대 |
예술인 공공영역 분야 참여 |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Career Path’에 기반한 공공부분에서 활동을 지원 | |
예술인 패스 |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에 있어 필요한 문화예술 분야의 정보와 재료, 관람 등에 소요되는 예산을 일부 지원 | |
예술인 자녀 돌봄지원 | 예술인의 자녀 돌봄을 위한 지원 사업 | |
예술가 사례비 현실화 | 예술계 각 분야에서 지원 사업 신청 시에 예술가 사례비의 현실화 | |
예술인 생활 지원 |
예술인 공공임대주택 지원 | 예술인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정부의 공공임대주택의 일부를 예술인을 위해 사용 |
예술인 금고 확보를 통한 생활대출지원 | 예술인이 주택, 결혼, 자녀 학비 등에 필요한 자금을 최소한의 신용으로 최저리로 대출 지원 |
문재인 정부의 예술인 복지정책이 성공적으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1) 예술인 복지정책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리적 근거 마련, 2)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정립, 3) 현장예술인과의 충분한 소통과 협력, 4) 예술인의 요구에 부응하는 실제적인 정책 프로그램 기획, 5) 새로운 예술인 복지정책에 부합하는 법적·제도적 정비와 각 사업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요구된다. 이러한 과제들은 결국 예술인들의 창작환경 개선과 그에 따른 창작권리 확대, 자유로운 예술 활동의 보장으로 연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술인 복지는 법이나 제도로 명시되지 않으면 실현 가능성이 없다. 그러나 예술인들의 지위와 권리가 복지제도를 통해서 모두 획득될 수 없는 것처럼, 예술인 복지에 대한 제도적 장치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예술인 복지법이 갖는 문제들을 예술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부족한 법적 내용을 보완하는 재개정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예술인 복지법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선진국의 예술인 복지 관련법처럼 기본적인 사회보험 적용과 예술인 실업급여 지급, 연금 지급 등에 대한 실현을 법으로 명시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예술인 복지를 위한 핵심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 보조 사업을 수행하는 단순 기능 역할에서 벗어나 독일의 경우처럼 예술인 복지금고를 운영할 수 있는 실질 주체로서 자리매김해야 하며, 금고의 재정 확충을 위한 국고와 지방예산, 기업 후원을 이끌어내야 한다.
예술인 복지는 궁극적으로 법과 제도를 넘어서는 복지의 의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첫째, 예술인에게 있어 진정한 복지는 경제적 보상과 공공 지원의 확대가 아니라 창작의 권리, 즉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에 있다. 예술인 사례비나, 사회실업급여, 연금제도와 같은 사회보장제도는 표현의 자유라는 예술인의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권리가 전제될 때, 사후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예술인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는 표현의 자유에 선행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보장의 권리를 포함하는 예술인의 보편적 권리이다.
둘째,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예술인이 직업이 아닌 행위로서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우리 사회에 미적 가치를 상승시키는 역할에 있다. 예술인들이 왜 복지 혜택을 누려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감 없이는 상대적 혜택을 받는 특수 계층으로 인식될 소지가 높다. 예술인 복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그들이 우리 사회의 정신적· 심미적 가치의 활성화를 위해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될 수 있다.
셋째, 예술인 복지는 역설적으로 예술인 자립을 전제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예술인 복지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술인으로서의 사회적 의존을 스스로 인정하고 복지의 수혜자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자립을 위한 조건을 확보하는 데 있는 것이다. 예술인 복지의 특혜와 수혜의 기본적인 물적 토대마저도 없는 상황에서 그러한 요구가 반드시 이기주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없지만, 예술가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술행위, 표현의 자유, 예술적 실천에서 스스로 자립하는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자립이 전제되지 않는 복지는 배타적 특혜이자, 수혜에 불과하다. 예술인 복지는 예술가의 삶에서 필요조건이 될지 몰라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예술가의 삶에서 충분조건은 창작 행위 그 자체에서 나온다. 예술의 필요조건으로서 복지와 예술의 충분조건으로서 창작행위가 서로 상생할 때 예술인들의 복지는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