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실리테이터가 말하는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2016.52014년부터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진행하며, ‘퍼실리테이터’라는 역할을 만드는 데 같이 고민을 보탰습니다. 제가 예술가들이 사회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점과 고민을 미리 경험했다는 의미에서 사업 초기부터 참여했던 같습니다. 당시 지역 멘토로 제주도 지역을 맡았는데, 확실히 거리가 너무 멀면 자주 못 가게 됩니다. 기업·기관을 선정할 때, 물리적으로 활동 가능한 거리에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퍼실리테이터는 예술가와의 스킨십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담당하는 기업·기관과의 스킨십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작년 3개 기관을 담당하면서 큰 불편 없이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동력은 사업 초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공을 들여서 기업과의 스킨십을 시도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익숙한 일은 아니지만 너무 어려워 마시고, 적극적으로 시도하면 훨씬 좋은 성과가 날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아주 단편적이고 장르적인 수준에서 예술가를 이해하고, 예술가를 도구화하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기업·기관의 요구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더 주체적으로 예술실험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의미를 만드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기업·기관의 문제점 그리고 그 안의 긍정적인 면을 읽어서 더 개선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해야 합니다.
저는 작년에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했고, 현재는 장르를 불문하고 규정지을 수 없는 장르에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6개 장르의 예술가와 6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크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과 조직문화개선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작년 활동했던 것을 토대로 팁 몇 개 정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작년에 사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기업과 예술가의 사업 이해도와 관계 형성입니다. 그래야 예술가들이 기업·기관의 제한을 받지 않고 최대한 자유로운 활동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업에 대한 이해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더 완성되어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초반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면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과정에서 나온 정말로 많은 결과물이 실질적으로 도입되어 활용되지 못했다는 겁니다. 예술가들의 작업물이 어떻게 기업에 활용할 수 있을지 그 연결고리에서 창의적인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프로젝트에서 어려웠던 점은 복잡한 보고 과정, 최종 확정까지 가서 임원들이 사업에 대한 인지나 이해가 부족해서 계속 무너졌던 겁니다. 저도 예술가도 지쳐버렸죠. 여기서 드릴 수 있는 팁은 임원급의 최종결정권자에게 직접 보고하는 구조를 만들거나, 과정을 인지할 수 있게끔 끊임없이 직접 보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해야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조그마한 동네에서 활동했습니다. 사업 초기부터 참여했었는데 2014년은 27명의 예술가를 맡아서 관리형 멘토로, 2015년에는 3개 기관을 선정해서 7명의 예술가와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작년 참여했던 예술인 중 평균 연령대가 가장 높았던 팀으로 70대 2명, 60대 1명, 50대의 퍼실리테이터, 40대 2명, 30대 1명, 20대 1명, 총 7명으로 구성되었죠. 연세 높은 예술가들과 진행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의견을 반영해서 프로그램 만드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기업이나 기관의 니즈를 평가하고 판단을 내리다 보니 파견 기업·기관 담당자와 예술가가 만나는 자리가 굉장히 불편한 자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짐했던 것은 물론 기관과의 원활한 관계도 중요하지만, 평생을 예술가로 헌신하며 살아온 예술인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지 말자는 거였습니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분들이 자칫 얻게 되는 상처가 너무 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적성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예술가 본연의 가치들을 스스로 좀먹을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저희가 간과하면 안 되는 부분이 이런 지점입니다.
덧붙여 ‘서브-잡’이라는 이 사업의 명칭과 한 달에 10일, 시간으로는 총 30시간 이상이라는 한계를 너무 의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면 마치 피해를 보는 것처럼 판단하는 것이죠. 갑질을 하는 기관도 문제가 있지만, 갑질을 하는 예술가도 분명 있습니다. 활동하시다 보면 분명 예상치 못하게 만날 수 있는데, 그런 점을 고려하고 각오를 다지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업 첫해부터 멘토로 시작해서 작년에는 퍼실리테이터로 활동을 했습니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는 모호함이 많이 있었죠. 한정된 10여 명의 멘토가 많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활동하다 보니 개개인의 활동을 정확하게 목격해내고 해석하고 도와주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구체적으로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사업 참여를 고민하다가 몇몇 권유와 스스로의 고민을 안고,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했습니다.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은 단순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임감이라는 면에서 아티스트가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활용해 작업하는 것뿐 아니라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방법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낼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사례를 고민해야 하고, 사례를 생산해내면서 그것들이 가치가 있다고, 곧 예술가가 사회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는 거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존립 근거에 대한 비판이 많이 있습니다. 일반 복지도 잘 안 되는 나라에서 과연 예술가를 위한 복지가 될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에서 충분히 예술가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근거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줄 수 있고, 이 사업이 그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퍼실리테이터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책임감이라든가 예술에 대한 의지 등이 사업에 조금씩 반영이 되어 다양한 형태로, 이 사업이 어디로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점선 구분선 “초반에 어떻게 세팅을 하고 리서치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집니다” 강지윤
작년에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했고, 재작년에는 참여예술가로 이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다음 달이면 매칭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6개월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초반에 어떻게 세팅을 하고 리서치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이상 리서치에 시간을 할애하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 기간에 일단 기관의 문제와 니즈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조심스럽게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말로 이 교육 프로그램이 최적의 활동인지 검토해봐야 합니다. 가장 쉽게 선택하는 것이 조직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이나 환경미화 관련 프로그램인데, 그런 것들을 조금 더 확장해 줄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셔야 할 것 같아요.
기업의 요구뿐 아니라 협업하는 사람에 대한 리서치도 중요한데, 이 사업을 하겠다고 결정하신 분들은 결정권자고 우리가 만나는 분들은 실제로 해당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입니다. 자칫하면 말단 직원들이 굉장히 고생하면서 자기 임금과 상관없이 추가 근무를 하는 구조로 흘러가게 됩니다. 예술가와 대표가 결정하고, 직원들은 일과를 마친 후에 퇴근을 못 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듣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거죠.
그리고 보통은 미술 하는 분이면 기관도 그렇지만 예술가도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니 그림 그려야지 아니면 연극을 하는 분이면 연극을 해야지 생각합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협업하는 경우가 많고, 그럴 때는 직접적인 자기 재능 말고도 연결 지점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웃상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술 분야의 작가입니다. 이 사업 이전에 공예나 디자인 작가와 현장에서 활동하는 프로젝트를 했었고, 참여예술가로 시작해서 작년에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고 올해도 다시 재단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은 올해와 사업 진행방식이 다른 데, 작년에는 퍼실리테이터들이 매칭 기관을 스스로 섭외하는 큰 과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시니어 문화예술 쪽에 관심이 있어 서울 소재 중소규모의 시니어 복지기관들을 섭외해서 다 장르 작가들과 작업했습니다. 작업은 쉽지 않았고 과정에서 상당히 내상을 입으며, 현장에서 힘들었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강한 멘탈의 소유자들이었다면 훨씬 잘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고, 그 부분들을 좀 더 독려하셔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사례에서는 패션 기업 사회공헌 부문에서 스트리트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는 분명한 니즈가 있었고, 예술인이 거의 10개 정도의 제안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기업에는 워낙 상업미술적인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파견된 예술인의 공공미술 관점과의 미감 충돌이 있었습니다. 많은 시간과 예산의 소모가 있었고 최종적으로 실행을 끝내야만 하는 예술인에게는 매우 힘든 지점이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어쨌든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왔는데, 마지막 구청 허가 과정에서 사업 성과에 대한 크레딧 경쟁이 일어났습니다. 구청에서 먼저 홍보를 터트리면서 기업과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 이어 기업 홍보에서는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과 구청이 드러나지 않는, 뭔가 합일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런 실질적인 문제들이 굉장히 많을 텐데 잘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점선 구분선 “때로는 자기를 버리면서 매개자가 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오석근
재작년엔 참여예술가, 작년엔 퍼실리테이터였어요. 제가 이 사업을 한 이유는 먹고 살 기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 건데, 실제로 기업에서 계속 연락이 오고 보완해가면서 하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기업이나 지역과 할 수 있는 일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거죠.
하고 싶은 일이지만 너무 예산이 없고, 지자체에서도 지원이 없는 경우가 있었어요. 돈이 없으니 아이디어 싸움이 되어서, 크라우드 펀딩도 해보고 사업 기간도 예술가들끼리 자발적으로 길게 잡았죠. 지원서도 써드리고 아이디어도 드리고. 힘들었지만 기뻤고, 결국 이런 것들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과정에서 굉장히 지치고 무력감이 일상이 되는데, 사실 목표는 더 멀리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앞에 있는 것에 슬퍼하지 말았으면 해요.
중요한 것은 대표 혹은 책임을 질 수 있는 실무자와 중간에 어떤 필터링 없이 가야 일이 잘 진행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술가들과 “예술가들과 퍼즐을 잘 맞추자!” 목표가 있고 니즈가 있으면 퍼실리테이터는 그 목표를 향해서 예술가들과 최대한 가능성을 만들 수 있도록 진행을 해야 합니다. 여러 재능이 모이면 어떤 시너지가 날지 상상할 수 있다면 일을 진행할 때나 기업과 예술가를 뽑을 때도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거기에 재미가 더해지고 마음이 더해진다면 좋은 효과와 결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당부드릴 것은 기업은 미술관도 아니고 비엔날레도 아니라는 겁니다. 때로는 자기를 버리면서 매개자가 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끔 머리를 맞대고 가는 것이, 우리가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점선 구분선 “퍼실리테이터는 관리자가 아니라 조력자이자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양철모사업 초기부터 함께 했었고. 작년에는 리스크 관련 부분을 담당하는 기획위원을 맡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으로 신생공간이 안정적으로 만들어지거나 혹은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식으로 2차적, 3차적인, 어떤 예술가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이 사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제안과 움직임, 즉 여러분 모두가 ‘이 사업이 예술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함께하는 주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기관에서 퍼실리테이터와 예술가를 신뢰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만 해주길 바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기관 대표가 원하는 것을 2개월 동안 들어준다. 나머지 2개월은 예술가들이 원하는 것을 대표가 들어주고. 그리고 남은 2개월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논의하는 시간을 갖자.” 기업·기관의 요구와 예술가의 요구를 동등하게 할 수 있도록 퍼실리테이터가 제안, 설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업이나 기관은 굉장히 보편적인 어려움을 예술가가 해결해주기를 바랍니다. 퍼실리테이터는 기관의 요구와 기관을 둘러싼 환경을 잘 분석하고, 예술가들에게 설명해서 의견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관리자가 아닌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사례를 제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으면 재단과 상의해서, 재단에서 공식적인 입장으로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퍼실리테이터로서 안정적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함께하는 방법은 조력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