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으로 본 창의성 “예술가의 창의성은 어디에서 나오나?”
2018. 6예술가의 창의성과 그 동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1960년대 버클리대에서 진행된 관련 연구에는 트루먼 커포티,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프랭크 오코너를 비롯해 건축가, 과학자 등 당시 유명한 창작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초대를 받고 캠퍼스에 모인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연구진이 진행하는 다양한 실험과 관찰, 검사에 응했다. 당시 이 창작자들로부터 알아낸 중요한 한 가지는 창의성이란 너무 복잡하고 다면적이어서 그것을 구성하는 구성요소 역시 한 가지 요인으로 축약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연구진은 지능지수와 학업 성적이 얼마간 연관성을 보였지만 창의성과 그 동기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50여 년 후, 벨기에 루벤가톨릭대학 연구팀은 ‘예술가의 뇌는 보통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4년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예술가들은 뇌의 상층에 자리한 두정엽이 쐐기전소엽 부위에 두터운 회백질과 백질을 지닌 것으로 조사됐다. 예술 분야 학생 21명과 비예술 분야 학생 23명의 뇌 사진을 분석한 결과였다. 연구팀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미세운동과 절차기억(행위·기술 및 조작에 관한 기억)을 통제하는 뇌 부위가 더 발달돼 있는 것 같다”면서 동시에 창의성을 비롯한 예술적 재능의 어떤 부분이 선천적인 것이고, 어떤 부분이 학습된 것인지는 구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렇더라도 이 연구 결과는 ‘흔히 예술가들은 우뇌를 사용한다’는 통설을 뒤집는 것으로, 창의적인 아이들을 10대 때부터 추적 조사할 필요성을 공유하는 등 이후의 연구 방향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근래 전에 없이 창의성이 부각되는 데에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예견된 위협적인 미래상의 영향이 크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중요한 점 중 하나로 창의성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인공지능에게 거의 모든 일자리를 빼앗기게 될 거라는 인식과 함께 인공지능이 현재까지는 갖지 못한 창의성과 서사적 기억, 사회적 지능 등의 능력을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예견은 창의성 연구에 불을 붙였다. 2000년대 들어서만 창의성을 주제로 1만여 편의 연구 논문이 쏟아졌다. 특히 뇌과학의 발달로 창의성이 발현되는 원리를 뇌를 통해 밝히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어떤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이 창의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만
막상 무엇이 창의적인지를 말하라면, 모르겠다”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화가)
뇌과학은 뇌의 복합적인 기능과 구조를 해석해 인간의 유전자 법칙뿐 아니라 물리적·정신적 기능을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응용학문이다. 즉, 뇌라는 렌즈를 통해 인간과 관련한 여러 학문과 문화예술을 이해하고 융합하는 학문이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믿는 뇌과학에서는 ‘무엇이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가’하는 물음의 답을 뇌에서 찾는다. 이미 신경정치학, 신경건축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뇌과학을 활용하고 있는데, 인문사회학이나 예술, 미학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신경미학은 예술과 밀접하게 관계한다. 이렇듯 뇌과학이 무엇인가는 비교적 정리가 쉬운 데 반해 그보다 활발하게 회자되는 ‘창의성’은 그렇지 않다. “어떤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이 창의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만 막상 무엇이 창의적인지를 말하라면 모르겠다”고 말한 피카소의 말은 쉽게 이해가 된다. 뇌과학에서 합의된 정의로 한정할 경우 창조성은 ‘뇌 속 신경망이 기존의 연결과는 다른 유형으로 재구성됨으로써 문제해결이나 창조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 생성을 이루는 성향 또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창의성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다 다릅니다.
그러나 창의성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동시에 다 똑같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다가 지금은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거의 마술과 같습니다.”
- 조나 레러(Jonah Lehrer, 작가)
그런데, 현재까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뇌의 특정 영역은 없다는 게 정설이다. 뇌과학자들은 창의성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따로 있지 않다고 추정한다. 뇌의 특정 부위의 발달과 창의성의 관계를 규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뇌도 특별하지 않았다. 다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순간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창의성을 발휘하는 순간, 흔히 ‘유레카 모멘트(Eureka Moment: 섬광 같은 통찰의 순간)’라고 하는 그때 뇌의 여러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된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게다가 그 순간에는 평소에 서로 신호를 잘 주고받지 않던 부위가 활발하게 신호를 주고받는 게 포착되었다. 우리 뇌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영역들이 그 순간에 서로 연결되는 걸 발견한 뇌과학자들은 사실 인간의 뇌가 창의성을 발휘하기에 적절한 디자인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뇌는 생존에 유리하게 디자인되었고, 창의성은 당장 뇌가 인식하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재미있는 건, ‘생존과 상관없이, 평소 하지 않던 연결을 시도할 때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뇌과학적 발견은 예술가들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당연한 명제라는 점이다.
결국 창의성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것들의 생산적인 재배열이라고 할 수 있다.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평소에 잘 안 쓰고 잘 연결하지 않는, 신호를 주고받지 않는 뇌 영역들 간에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습득하는 게 중요한데, 새로운 사람, 다른 분야의 전문가, 나와 다른 장르의 예술가 등을 만나라고 권한다. 가령,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을 만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는 참여예술인들의 공통된 소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예술인은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하고 고양한 경험을 오래 기억한다.
최근 연구에서는 몇 가지 사실을 더 추가했다. ‘유레카 모멘트’에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본 결과, 관자놀이 부근(Anterior Superior Temporal Gyrus)이 반복적으로 활성화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을 ’유레카 영역‘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주로 우리가 산책을 하거나 버스 창밖을 멍하니 내다볼 때 다시 말하면, ‘멍 때릴 때’ 활동하는 뇌 영역이다. 이전까지 창의성의 기원을 ‘몰입’으로 설명해온 과학자들은 이 연구 결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몰입 상태에서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설명했는데, 연구 결과는 반대로 완전히 비목적적인 생각이나 아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불현듯 창의성이 발휘되기도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목적 없이 자유롭게 인지 영역을 산책하듯 거니는 상태일 때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는 이 발견 역시 예술가들에게는 그리 놀라운 게 아닐지 모른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창의적인 순간은 현재 가진 지식과 경험에 매몰되지 않고 상관없어 보이는 지식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수많은 시도 속에서 탄생한다. 계속되는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끝까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든다. 이 시도는 당장의 생존과 상관없고, 성공 확률이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시도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예술가라 부르는 바로 그 사람들. 뇌와 창의성의 관계가 밝혀질수록 예술가에게 비목적적 사고가 왜 중요한지, 일상의 생존에 함몰되는 상황이 왜 유독 치명적인지 잘 알 수 있다. 여러 번 실패해도 생존을 위협받지 않고 마음 편히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는, 그래도 괜찮을 수 있게 하는 안전망이 예술가의 창의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도. 그다음은 뇌과학이 아닌 복지의 영역이다.
관련 도서-
통찰의 시대
에릭 캔델 저 ㅣ 이한음 역 알에이치코리아 뇌과학이 밝혀내는 예술과 무의식의 비밀을 다뤘다. 신경과학자 에릭 캔델이 인류에게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과학, 예술, 인문학을 넘나들며 파헤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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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저 ㅣ 양병찬 역 ㅣ 알마 과학의 전반을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으로 하등동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물체들의 과학적 미스터리를 풀어내며, 진화의 의미, 의식의 본질, 시간의 인식, 창의력의 발현 등 과학의 심오한 주제에 관해 다루고 있다.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에세이집.